완벽한 한 끼를 찾아서 - 『Cook's Tour』, 앤서니 보뎅이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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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먹는가?" 앤서니 보뎅의 『Cook's Tour』는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한 복합적이고 깊은 탐구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면 흔하디 흔한 콘텐츠일 수 있다. 하지만 보뎅의 보는 관점은 달랐다. 이 책은 미식기행에 더해 인간과 삶, 전통, 역사, 고통과 환희가 버무려진 '완벽한 한 끼'를 향한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보뎅의 문장은 거칠고 솔직하며 때로는 시니컬하지만, 그 안에는 삶을 직면하려는 진지한 태도가 흐른다. 포르투갈, 죽음과 삶의 사이에서 책의 첫 시작은 포르투갈의 한 농장에서의 돼지 도축 장면이다. 여느 요리책이 피하고 싶어하는 그 장면을 보뎅은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말한다. “돼지에게 빚진 것이 있다. 이제 나는 돼지갈비 한 점이 살아 숨 쉬던 존재가 죽어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안다.” 보뎅은 이 장면을 일부러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요리책이나 여행기는 외면하려 드는 이 불편한 장면을 통해, 음식을 생산하는 진짜 과정을 보여주려 한다. 그는 요리사로서 단지 '요리된 고기'가 아니라, 그 고기가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직면하고자 하며, 그것이 진정한 '미식가'의 태도라고 여긴다. “돼지에게 빚진 것이 있다”는 보뎅의 말은 단지 동물복지를 이야기하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음식 뒤에 숨은 '살아 있는 존재의 죽음'을 잊지 말자는 일종의 윤리적 선언이다. 이 장면은 또한 이 책이 단순히 ‘이국적인 음식 모험기’가 아닌, 인간과 문화, 생명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독자로서도 이 장면을 통해 보뎅이 보여주려는 “완벽한 한 끼”란 단지 맛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들기까지의 전 과정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이해하게 된다. 나 역시 정육 코너에서 고기를 집으며 한 번쯤은 이 질문을 품어...

길 위에서 마주친 인간의 진실 『The Places In Bet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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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겨울, 영국의 외교관 로리 스튜어트는 아프가니스탄의 서쪽 헤라트에서 수도 카불까지 단독으로 걸었다.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직후의 전쟁터, 아직 불안이 가시지 않은 땅. 『The Places In Between』은 그 36일간의 도보 여행을 기록한 여정이자, 인간성과 문명의 경계선을 묵묵히 되짚는 보고서이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독자는 ‘여행기’의 틀을 넘어서는 무게감을 체감한다. 이 책은 지도 위의 경로에서 벗어나, 정신의 여정을 따라가는 문학적 작품이다. 스튜어트는 어떤 화려한 서사를 덧입히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그러나 세밀하게 써내려간 단어들로 삶과 죽음, 환대와 폭력, 폐허와 희망이 혼재된 공간을 독자의 눈앞에 펼쳐 보인다. 그 여정에서 독자가 함께 걷는 것은 먼 이국의 길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존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파 없는 일본, 정적이 들려주는 이야기,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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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도망이 아닌, 내 안의 풍경을 확장하는 일이라는 믿음으로.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두경아 작가의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은 그 확장의 가장 정확한 나침반이 되어 준다. “쉼표가 필요할 때, 진짜 일본의 모습을 찾아가는 나만의 소도시 여행.”

시선을 사로잡는 여행의 지도, DK Eyewit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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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 책장을 넘기는 일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인터넷이 실시간 정보를 쏟아내는 시대에도 DK Eyewitness 시리즈는 여전히 손에 잡히는 설렘을 전해준다. 마치 고대 지도 제작자의 정밀한 손끝처럼, 이 책은 여행이라는 큰 항해를 위한 시각적인 항해도를 제공하고 있다.

히말라야, 고요한 낙원의 길목에서: 『The Snow Leopard』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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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여정이 존재한다. 목적은 있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으며, 걸을수록 오히려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은 길. 『The Snow Leopard』는 그런 길의 기록이다. 피터 매티슨이 1973년, 히말라야 돌포 지역으로 떠난 이 여정은 눈표범을 찾기 위한 자연생물 탐사였지만, 내면에 담겨 있는 것은 죽은 아내와의 이별, 자아의 혼란, 그리고 삶의 본질을 붙잡기 위한 길고 고요한 그만의 내면 여행이다. “There are no such things as answers, just the search.”

시간의 선물: 사라진 유럽을 걷는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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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는 걷고 있다. 강둑은 하얗고, 나무들은 얼어붙은 꿈을 꾸는 것 같다." 이 문장은 파트릭 리 퍼머(Patrick Leigh Fermor)의 책 『시간의 선물(A Time of Gifts)』 중 한 구절이다. 그의 여행은 유럽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세계대전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전, 마지막 겨울을 통과한 한 기록이다. 그는 미래를 전혀 알지 못한 채 걷지만, 책을 읽는이는 그가 지나친 마을과 도시가 곧 전쟁에 삼켜질 운명임을 미리 알고 있다. 이 ‘시간 차이’가 책 전체에 절절한 감정을 부여하고 있다. 한겨울 유럽을 걷는 청년 1933년 겨울, 런던의 안개 낀 거리에서 출발한 18세의 청년 퍼머는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새로운 세상의 경계를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의 목적지는 유럽 대륙의 동쪽 끝, 그리스도교 문명의 오래된 교차점인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이다. 단순한 호기심도 아니고, 누군가의 명령도 아니었지만, 그는 삶의 의문들로 가득 찬 청춘의 충동으로 길 위에 서게된다. 출발지는 네덜란드의 호크(Hook of Holland). 겨울 바람이 매섭게 불던 날, 바지선을 타고 템스 강 하구를 따라 내려가며 유럽 본토에 첫 발을 내딛는다. 지중해의 따스한 햇살은 아직 멀었고, 앞에는 북유럽의 차가운 공기와 안개, 얼음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퍼머는 라인강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며, 독일의 전통적인 목조 도시들, 오스트리아의 황실 유산, 체코슬로바키아의 설원, 그리고 헝가리 평원의 언어도 풍경도 낯선 땅들을 순례하듯 지나간다.  풍차 옆을 스케이트 타며 달리는 네덜란드 아이들에게 감탄하고,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직후의 독일 맥주홀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불편한 예감을 감지하기도 한다. 퍼머는 단순한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 길 위에 서려 있는 사람들의 삶, 건물에 깃든 시간, 풍경 속에 숨겨진 역사를 채집한 것이다. 청년의 눈으로 본 잃어버린 유럽 책의 백미는 단연코 그가 지나친 유럽 도시...

여행은 누구의 것인가, 『Airplane Mode』 경계의 여행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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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기내에서 불현듯 켜지는 화면 속 지도가 있다. 그 위에 흐르는 궤적은 단순한 비행 경로가 아니라, ‘누가 이동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세계의 답이다. 샤나즈 하비브(Shahnaz Habib)의 『Airplane Mode: Travels in the Ruins of Tourism』는 이 묵직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 책 속에는 여행이라는 말에 깃든 역사, 편견, 그리고 기쁨의 궤적을 따라가며, 여권과 지도, 가이드북, 꽃, 그리고 회전목마 같은 ‘여행의 유물’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