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 없는 일본, 정적이 들려주는 이야기,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
여행은 도망이 아닌, 내 안의 풍경을 확장하는 일이라는 믿음으로.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두경아 작가의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은 그 확장의 가장 정확한 나침반이 되어 준다.
“쉼표가 필요할 때, 진짜 일본의 모습을 찾아가는 나만의 소도시 여행.”
소도시, 그 조용한 울림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은 표면적으로는 가이드북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이 책은 대도시의 번쩍이는 조명 뒤편에서 조용히 숨 쉬는 마을들의 이야기를 끌어올리는 작업이며, 관광지의 ‘핫플’보다 사람의 체온에 가까운 장소들을 소개하는 다정한 동반자다.
내가 이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닿은 것은, 여행에 대한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단순한 정보 수집의 도구가 아니라, ‘왜 지금 소도시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성찰적 대답으로서 이 책은 존재한다.
QR로 이어지는 편리함
가이드북은 종이 위에서 멈춘다. 그러나 이 책은, 움직인다. 각 도시마다 삽입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구글 맵으로 곧장 연결된다. 거리의 꺾임, 골목의 방향, 작은 찻집까지—책에서 읽은 것이 손안의 화면 위에서 살아 움직인다.
나는 이를 여행자와 도시 사이의 실시간 연결망이라 느꼈다. 정보는 풍성하지만 흩어져 있는 세상에서, 이처럼 물리적 거리감을 좁혀주는 구성은 고맙기 그지없다.
에히메의 온천에서 가고시마의 모래찜질까지
책은 일본의 혼슈, 시코쿠, 규슈의 소도시들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낯선 이름들이지만, 그 낯섦 안에 여행의 본질이 숨어 있다.
에히메에서의 온천 체험은, 단순한 피로 해소가 아니라 온천 문화에 녹아든 일본인의 생활 방식을 마주하는 일이었고, 가고시마의 모래찜질은 그 도시가 품은 지열과 인내의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이었다.
이처럼 저자는 장소를 단순히 소개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를 함께 들려준다. 책을 읽고 나면 여행의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성이 생긴다.
음식, 여행의 또 다른 문장
책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가와의 사누키 우동, 시즈오카의 녹차, 유후인의 버터향 나는 롤케이크까지—사진과 글만으로도 이미 감각은 크게 자극받고 있다. 그러나 그 맛을 넘어서는 묘사가 있다. 지역의 식문화, 식재료, 심지어는 음식이 만들어진 배경과 역사까지 세밀하게 다뤄주고 있다.
여행이 미각의 만족을 채우기 위함에서라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교통, 낯설음의 장벽을 허무는 기술
일본 소도시 여행의 가장 큰 장벽은 교통일 것이다. 이 책은 그 점에서 편리하게 다가온다. “인터넷, 교통편 따로 뒤질 필요 없이 정말 책만 보고 계획을 짤 수 있다”는 여느 독자의 말처럼, 각 도시로 가는 방법과 환승 정보가 매우 구체적으로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카야마에 도착하기까지 몇 번을 갈아타야 하는지, 버스와 기차가 어디서 만나는지, 작은 정보들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덕분에 소도시는 더 이상 ‘어렵고 불편한’ 대상이 아니다.
비주얼과 감성의 아름다운 충돌
책을 덮기 전, 사진들을 다시 본다. 단순히 예쁜 사진이 아니다. 적절한 거리감에서 찍힌 거리 풍경, 나지막이 찍힌 다실의 내부, 어느 무명의 신사 앞에 핀 철쭉 한 송이—
그 사진들은 ‘관광’이 아닌 ‘경험’의 시선을 닮아 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에서는 서툴지만 진심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나는 그 솔직한 구도에서, 여행자와 기록자의 자리가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장면을 읽었다.
나오시마, 사라진 섬이 다시 피어나다
예술의 섬, 나오시마는 내가 가장 강렬하게 반응한 장소다. 원래 인구 소멸의 위기에 처했던 이 섬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미술 공간 중 하나다. 빨강과 노랑의 호박 조형물은 이제 이곳의 상징이 되었고, 현대미술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런 변화는 여행의 본질을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잊힌 장소가 누군가의 시선과 발걸음으로 다시 피어나는 것.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은 그런 변화의 기록이며, 동시에 제안이다.
진심 어린 환대, 오모테나시를 만나다
소도시 여행의 핵심은 ‘오모테나시’, 일본식 환대 정신에 있다. 상업화된 대도시에서는 느끼기 힘든 따뜻함과 진정성이, 이 책이 소개하는 도시들 곳곳에서 살아 있다.
익명의 리뷰어가 남긴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이 책을 읽고 다녀온 다카야마에서, 민박집 할머니가 아침에 준 달걀찜 하나로 마음이 풀렸어요.”
책은 그런 만남의 가능성을 여는 열쇠이며, 각 도시의 이야기 속에 숨은 따뜻한 인연과 예기치 못한 감동을 발견할 수 있도록 조용하고도 섬세하게 방향을 비춰주는 등불이다. 낯선 길목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장면조차도 여행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이 책은 은근한 어조로 일깨워준다.
나만의 일본이 시작되는 곳
『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은 일상에 쉼표를 찍고 싶은 모두를 위한, 조용하고 따뜻한 책이다.
QR코드 하나로 연결되는 지도, 진심 어린 교통 정보, 입속에 맴도는 향토 음식,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마을들. 그 모든 요소는 ‘진짜 일본’을 마주할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을 보고 나니, 다시한번 일본으로의 다음 여행을 계획하게된다. 아마도 책을 읽은 누구나 그럴 것이다. 대도시의 시끌벅적함이 아닌, 작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도시들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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