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t, Fat, Acid, Heat 네 가지 맛의 여행

음식을 사랑하는 여행자라면 어쩌면 일상 지도 가이드보다 두꺼운 레시피북이 더 믿음직한 가이드가 되어준다. 사민 노스랏(Samin Nosrat)「Salt, Fat, Acid, Heat」이 그 대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Salt, Fat, Acid, Heat 네 가지 맛의 여행

일반적인 조리법의 모음 보다는 "맛의 작동 원리"를 알려주는데 초점을 맞추며, 읽는 이로 하여금 일본의 해안에서 부터, 멕시코 유카반 반도의 38도가 넘는 '루카스 데갈베스(Lucas de Gálvez)' 시장의 미로같은 골목, 캘리포니아의 햇살 가득한 주방까지 이끕니다.

"소금, 지방, 산, 열 이 네가지를 이해하면 주방 어디서든 길을 헤메이지 않을 것이다- 사민 노스랏"

이란계 미국 셰프가 일러주는 미식가이드

버클리의 전설적 레스토랑 '셰 파니스(Chez Panisse)'에서 경력을 쌓은 사민 노스랏은 이란 가정식과 캘리포니아 퓨전 음식,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음식의 전통 까지 흡수한 국경 없는 요리사이다. 그녀는 쉐프라기보다 교사라는 별칭을 즐겨 쓴다고 하는데, 이유는 요리에 첫발을 들인 중학생이든 미슐랭 스타 셰프이든 똑같이 '맛의 네 축'을 배우면 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민 노스랏

마이클 폴란이 Cooked를 집필하면서 사민에게 사사받았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폴란의 책 서문에는이렇게 회고되어있다.

"사민은 무질서한 주방에서도 이 네 단어 덕분에 항상 길을 찾아냈다"

두 권의 책을 한데 엮은 듯한 구성

책은 1부에서 '네 가지 요소, 소금, 지방, 산미, 열'과 2부에서는 '응용 레시피'로 나뉘고 있다. 전반부의 내용이 개념과 원리를 여행 에세이처럼 풀어낸다면, 후반부는 100여 개의 레시파와 150장 이상의 일러스트로 언제든 만들어 보게될 실전 가이드의 역할을 한다.

각 장의 말미에는 Suggested Menu가 실려있는데, 한가지 예로 '이탈리아 저녁상' 메뉴는 여행지의 시장에서 구입한 재료만으로 완성 할 수 있도록 가이딩 되어있다.

Salt, 짠맛 너머 균형을 배우다

"소금은 맛을 더하는 재료가 아니라, 맛을 깨우는 스위치다"

사민의 소금 여행은 시즈오카 현 엔슈나다 해변의 눈부신 새벽 염전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 곳에서 그녀는 수면위에 물결무늬를 그리며 바닷물을 얕은 점토 판으로 퍼 올리는 작업에 동참한다. 햇살과 해풍이 염도를 3%에서 15%로 끌어올릴 때까지 나무 갈퀴로 네 차례 결정층을 뒤집는데, 미세한 칼슘, 마그네슘 결정이 입혀지게 되어 손금에 '감칠맛 나는 쓴맛'이 더해지게된다.

결정이 눈꽃처럼 피어나면 장인들은 '니가리(苦汁)'라 부르는 염화마그네슘 용액을 분리해 두부 응고제와 채소 절임에 활용한다.

"소금은 짠맛이 아니라 광물 맛의 파노라마"

시즈오카를 떠난 그녀의 다음 행선지는 가나가와 현 가마쿠라의 18세기 목조 간장 양조장이다. 여기에선 소금이 키오케(木桶라 불리는 3m 삼나무 통 속에서 콩,밀,효모,시간의 조합으로 18개월간에 걸쳐 검붉은 감칠맛의 향연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다룬다. 통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효모를 손가락 끝에 얹어 맛본 뒤 사민은 이렇게 표현한다.

"발효란 소금이 맛의 서사를 집필하는 방식" 

Fat, 올리브 밭 향기 속으로

"지방의 맛의 트럭이다. 풍미를 실어 혀끝으로 배달한다" 

북부 이탈리아 키안티 언덕에서 사민은 새벽 5시, 은빛 안개를 헤치고 올리브 밭에 들어선다. 막 수확한 열매는 6시간 이내에 마을 협동 조합의 돌 맷돌(frantoio)로 옮겨져 27도 이하에서 저온 압착하게된다.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엑스트라 버진' 등급의 갓 짜낸 황록색 오일이 되는 것이다. 폴리페놀 성분 덕에 목을 간지르는 '페퍼 노트'와 아티초크 흙내음을 동시에 품고 사민은 "지방은 입안에 무음스튜디오를 지어 풍미를 녹음한다"라고 묘사한다.

그녀는 토스카나의 300년이 된 농가에서 돼지고기 전지를 손질해 굵은 바다소금과 로즈마리, 주니퍼베리로 문질러 10주간 숙성시키는 '살루메' 공정까지 베운다. 지방이 단단히 굳어가며 생기는 대리석 마블링 무늬는 슬라이스 될 때 입안에서 천천히 녹아 들어 감칠 맛을 폭발 시키게 된다.

"지방은 칼로리가 아니라, 풍미를 저장하고 시간 여행시키는 타임캡슐"

Acid, 라임 향기를 찾아서

"산미는 음식에 빛을 켜는 스위치다"

멕시코 유카반 반도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메리다 시장의 구불구불한 통로를 따라 향신료와 파파야 향이 뒤섞인 공기를 가르며, 그녀는 주황색 그물 자루에 담긴 신 오렌지 '나랑하다(Naranja Agria)'를 고른다. 껍질을 톡 터리리면 라임, 화이트자모, 송진향이 한꺼번에 퍼지고, ph 3.5의 강렬한 산도가 뒤따른다. 이어 시장 귀퉁이에 자리한 할머니에게서 셰비체의 전통 비율을 전수 받게 된다. 

10분간 숙성된 살사는 새우나 돼지 지방을 깨끗이 씻어내며, 훈연 향, 허브 향, 스트러스 향이 복합적으로 이어져 산미가 지방을 깎아내고 다시 봉합하는 듯한 미각의 수술을 완성한다.

Heat 버클리로 돌아온 화력의 실험장

"불은 요리사의 서명이다. 같은 재료도 어떤 열로 다루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탄생한다"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셰 파니스(Chez Panisse)' 1층 오픈키친에서는 매일 오후 5시가 되면 참나무 장작을 채운 화덕이 섭씨 405도 까지 달아오르며 향긋한 연기를 뿜어낸다. 사민은 그 불 앞에 서서 로마네스크, 베이비 당근, 레드치커리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과 레몬 제스트에 버무린 뒤 철제 그릴에 올린다. 45초마다 집게로 뒤집어 수분을 날려보내고 마이야르 반응을 극대화하며 겉면이 흑진주색 방울처럼 거칠게 부풀었을때 화덕에서 꺼낸다.

"껍질은 화산암, 속살은 농축시럽" 

이런 묘사를 하며 흘러나오는 당액을 손가락 핑거 테스트로 확인한다.

"Heat makes caramel without sugar- 불이 설탕 없이 카라멜을 짓는다"는 메모가 그녀에 노트에 담기게 된다. 이런 장면은 실제로 '파이어 키친 투어'에 참여하면 이 과정을 가까이서 관찰 할 수 있다고 한다.  

완벽한 사진 대신 들어간 일러스트

기존의 요리책들은 화려한 플래터 사진을 앞세우고 있는데 반해, 이 책은 전면부터 수채화풍의 일러스트가 배치되어있다. 삽화가 웬디 맥노튼이 각 지역 식재료의 계절 캘린더와 맛 균형 그래프를 유쾌하게 손글씨로 담아내어 상상력을 자극한다.

페이지 한가운데 파스텔톤 세계지도는 오일의 풍미 스펙트럼과 발효 소소의 ph 농도로 둘러쌓여 맛의 지도로서 풍성한 정보를 제공한다.

재료가 먼저 말을 걸게하라

사민은 책을 읽는이들에게 레시피를 따라하는 대신 현장에서의 재료가 먼저 말을 걸게하는 조언을 남긴다. 여행지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식재료와 감각으로 대화 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내가 도착한 도시가 어디든지, 시장에서 얻는 소금과 산, 지방, 거기에 불을 조절할 수 있다면 그곳이 자신만의 레스토랑이 되어준다.
"맛의 비밀을 알면, 어디서든 집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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