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마주한 시간과 기억, 『The Old Ways: A Journey on Foot』
인간과 자연, 기억이 교차하는 경로 위에서 사유의 깊이를 탐구하는 과정. 로버트 맥팔레인(Robert Macfarlane)은 영국 도버의 백악절벽과 스코틀랜드의 이탄 지대를 거쳐, 팔레스타인의 석회암 지형, 티벳의 만년설 봉우리까지 고대의 길을 따라 이동하며 장소가 간직한 시간의 층위를 꿰뚫어본다.
『The Old Ways: A Journey on Foot』 는 이런 과정에서의 걷기 행동이 사유에 대한 매개체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I walked because I was drawn to the past through the press of footsteps -나는 발자국 소리를 통해 과거에 이끌려 걸었다."
The Old Ways라는 이름의 무게
이 책은 저자의 풍경(Landscapes) 3부작 중 세번째 작품으로 2012년 6월에 첫 선을 보이게 된다.
"Map are stories we carry in our pockets" 라는 문장은 지도가 단순하게 도형의 집합이 아닌 인간의 삶 곳곳에서 지녔던 기억과 내러티브에 대한 이야기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읽는이는 책에서의 여정이 곧 자신만의 이야기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길'이 품은 의미, 다각적인 면을 보다
길을 걷는 행위는 물리적 이동으로 비롯된 인식과 사유의 확장이다. 저자는 길을 "풍경의 호빗들"이라 부르며, 인간이 합의와 의도를 담아 빚어낸 사회적 창조물이라고 말한다.
"A path is an argument written across the land"
길의 의미가 단순한 흙길로 치부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논쟁을 만들어내고 대화라는 의미 전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각 갈래의 길이 내포하고 있는 역사와 문화적 주제를 향해 걸을 때마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한다.
걸음마다 펼쳐지는 풍경의 서사
파트1 Tracking 추적 - 영국
고대 트랙의 네트워크와 역사석 생성 과정을 담는다. 땅이 걸음 하나하나를 기억하며 그 위에 시간의 층위를 새긴다고 표현하며, 인간의 발자국이 곧 지형의 일부가 된다고 상징성을 보여준다.
"Walking is the meeting of mind and landscape - 길은 합의에 의한 창조물"
위 문장과 같은 루소적 통찰은 걷기가 운동이 아니라 사유와 풍경의 조우라고 뜻하고 있다. 사유가 걸음과 함께 리듬을 이루며 전개됨을 강조하고 있다.
Icknield Way를 거닐며, "The chalk beneath my boots felt like writing on skin"라는 문장을 남긴다. 백악의 부드럽고 미세한 입자가 마치 피부에 잉크 자국을 남기는 듯한 감각적인 경험에 대한 묘사인 것이다.
Broomway의 위험한 해안 경로에서는 조수 간만의 차로 발걸음이 지워져도 경험의 흔적은 마음속에 오래 남게된다는 의미를 내놓기도 한다. 자연의 망각과 인간의 기억이 교차하는 부분을 섬세하게 조명하고 있다.
파트2 Following 따라가기 -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순례자들이 남긴 해상 루트를 따라가며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흔적에도 불구하고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Sea Tracks vanish but never die - 바다속 항로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역사로서 영속성을 가진다"
Sula Sgeir 와 North Rona를 거치며 작은 섬들이 간직한 방대한 역사와 전설이 한 사람의 어깨에 다 짊어지기는 벅차다고 고백하며, 공간에 대한 압도적인 깊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탄 지대를 맨발로 걸을 이탄 토양이 발걸음에 반응하며 서서히 내려앉는 모습을 기억의 메타포롤 표현하며, 토양과 기억이 함께 부드럽게 움직이는 감각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Peat yields like memory underfoot- 발밑의 기억과 같은 이탄지대"
Geocrab의 편마암 위에서는 지층마다 쌓인 시공간의 이야기가 고요 속에 기록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자연이 스스로 인간의 언어 없이도 서술한다는 의미를 주장한다. Cairngorm의 화강암 지형에서는 산 속에 숨겨진 비가시적인 공간과 경험이 있음을 비유하며, 지도가 닿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겨외감을 가져다 준다.
"Inside a mountain there are rooms no map reveals"
파트3 Roaming 돌아다니기
팔레스타인의 석회암 지형을 지나며 오래된 돌들이 과거 인류와 대화하듯이 이야기를 속삭인다는 내용을 담았다. 인간이 잊은 언어로 말하는 자연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초대로 해석하면 된다.
"Stones speak in tongues we have forgotten- 돌은 우리가 잊고 있던 방언으로 말한다"
Camino de Santiago 순례길과 Minya Konka의 만년설 기슭에서도 순례자들의 발걸음에 자신의 정서와 경험을 남긴다는 연대기로서의 길을 주장하고, 빙하는 인류의 기록을 넘어설 정도로 방대한 시간의 증인이라고 뜻하고 있다. 눈과 얼음속에 묻힌 세월의 무게를 상기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파트4 Homing - 다시 집으로
"Snow rewrites the land in silence - 눈은 침묵 속에서 이 길을 다시 쓰고 있다"
저자는 땅의 역사를 다시 쓰는 듯한 고요함을 상징하고, 다른 여러 길에서도 과거 예술가들의 사유와 교차하는 지점이라던지, 플린트 지형을 여행하며 화석화된 불길의 잔향이 돌에 깃들어 되돌아오는 이미지를 전달하기도한다.
Formby Pooint의 선사시대 발자국 앞에서 그는 자신의 발자국이 수천 년 전 발자국과 마주하며 시간의 대활를 이룬다고 표현한다.
"My footprint answered one five millennia old"
천천히 음미할 수록 배가되는 글
저자는 시적 은유를 통해서 풍경의 미묘한 결을 심미적으로 그려내고 동시에 지질학, 고고학, 식물학등 다양한 학문적 지식을 정교하게 결합해서 문장마다 과학의 엄밀함을 담보하고 있다. 단순한 묘사를 넘어선, 걸음마다 쌓여가는 감정의 지층과 사유의 인상을 차곡차곡 감각의 지형도로 그려낸다.
빠르게 읽는 이들은 책의 속도감이 다소 답답하게 느겼질 수 도 있을 것이다. 저자가 추구하는 것은 속도의 부재를 넘어서, 잠시 멈추어 풍경을 깊이 들여다보고 사유의 여백을 누리는 행위가 진정한 여행의 핵김이라고 강조한다..
속도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주변의 소리, 냄새, 감각에 집중할 때 삶과 세상을 더 풍부하게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들이 모여 몸과 마음에 오래도록 잔상을 담기게 된다고 주장하며 바쁜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일시 정지 버튼과 같은 치트키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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