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숲으로 여행 간다, 삶을 자연의 리듬에 맞추는 연습
사람들은 왜 숲으로 가는가? 도심의 소음에서 멀어지고 싶은 단순한 회피일까, 아니면 어떤 본능적인 회귀일까. 《우리는 숲으로 여행 간다》는 자연이라는 오래된 친구를 다시 찾아가는 길잡이이며, 동시에 사람들의 일상에 치유의 틈을 만들어주는 감성적인 지도와 같은 책이다.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저자 부부의 묵직한 경험이다. 안윤정과 서은석, 이들은 15년 넘는 시간을 전국의 자연휴양림과 치유의 숲에서 보냈다. 단순한 방문이 아닌, '정주'에 가까운 여행을 반복하며 그 속에서 살아 있는 이야기를 길어 올렸다. 그들의 언어는 화려하지 않지만 진정성으로 빛난다. “숲의 소리는 우리의 생각을 잠재우고, 느린 호흡을 선물한다”는 책 속 문장은, 독자 스스로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게 한다.
느린 여행을 위한 정확한 길잡이
책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독자를 위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초보자를 위한 예약 플랫폼 비교, 캠핑 준비물 체크리스트, 계절별 추천 장소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특히 국립공원과 지자체 산림시설 간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여, 독자가 자신의 목적에 맞는 여행지를 쉽게 고를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모든 정보가 단순한 수집이 아닌, 실제 체류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신뢰가 간다.
여행 중에 웹에서 본 정보는 현실과 너무 달라 실망이 컸던 적이 있다. 그 뒤로는 반신반의 하며 정보를 보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실제 저자가 예약하고 체류한 후 작성한 평가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어 허위 기대를 줄이고 있다. 일반적 정보에 체험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더 유용한 가이드였다.
테마로 묶은 숲의 이야기들
책은 단순히 장소를 나열하지 않는다. ‘힐링이 되는 숲’,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숲’, ‘바다가 보이는 숲’, ‘전망이 좋은 산림’, ‘캠핑에 특화된 야영지’ 등 테마별로 정리되어 있다. 각각의 테마 속에서도 장소마다 다른 특징과 분위기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봉화의 비슬산자연휴양림은 피톤치드의 농도 데이터와 함께 산림치유 프로그램의 효과까지 소개된다. 이런 접근은 ‘자연은 무조건 좋다’는 막연한 관념을 넘어서, 실제 건강 증진 효과까지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 숲은 심신을 달래주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몸에 좋은 장소’인 셈이다.
이런 분석을 읽으며 나 역시 예전에 참여했던 숲 체험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몇 시간 걷고 앉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체의 긴장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책 속 테마별 정리는 단순한 분류를 넘어선 공감으로 다가온다.
생태와 역사가 만나는 길목에서
《우리는 숲으로 여행 간다》의 진가는 단순한 힐링을 넘어 장소의 맥락적 역사를 함께 전달할 때 빛이난다. 한 예로 공주산림휴양마을을 들 수 있다. 그곳은 울창한 숲이지만 평범한 곳이 아니다, 백제 시대 왕실의 사냥터였던 역사를 품고 있다. 저자는 이 숲을 공산성과 연계해 소개하며 단순한 야외 활동을 역사 탐방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여행을 통한 ‘배움’의 경험을 제공한다. 단지 걷는 것에서, 걷는 곳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니, 발걸음 하나에도 의미가 붙는다. 독자로서 가장 큰 만족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숲의 현재를 경험하는 동시에, 그 뿌리를 더듬는 시간. 여행이란 결국, 낯선 장소에서 나의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숲을 위하여
이 책은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등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접근성 정보도 충실히 담고 있다. 월악산의 무장애 탐방로, 지리산의 태양광 캠핑장 등은 ‘모두를 위한 숲’이 단지 구호가 아님을 증명한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며, 그 실천이야말로 진정한 공공의 가치일 것이다.
자연이 제공할 수 있는 평등한 권리에 대한 제안처럼 읽히는 대목이다. 숲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쉼터이며, 그곳은 소수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이 책 곳곳에서 들린다. 이런 점이깊은 감동을 주는 요소로 보인다.
숲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태도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숲 여행의 본질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것이 있다.”
이 구절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철학처럼 다가온다. 숲은 배려와 기다림의 공간이다. 빨리 걷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머무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실제로 나 역시 산이나 숲에 들어설 때면 시계를 보지 않게 된다. 흐르는 바람, 흔들리는 잎, 울리는 새소리만이 유일한 시간의 단서가 되어 준다. 책에서는 독자에게 이런 시간 감각을 회복하자고 말하고 있다. 단순히 쉼표가 아니라, 숲 여행의 틀을 되짚어 보는 새로움을 제안하는 책이다.
나만의 숲을 찾아 떠날 시간
‘어디로 갈까’를 알려주는 책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자연을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요청한다. 정보와 감성, 과학과 철학이 교차하는 이 책은 숲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써내려간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팬데믹 이후, 우리는 자연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찾게 되었다. 하지만 단지 피로를 푸는 수단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와 관계 맺는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는 숲으로 여행 간다》는 그 고민에,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답한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나 역시 숲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단지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되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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