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북의 뿌리를 따라 걷다 『오버그라운드 레일로드(Overground Railroad)』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로드트립은 여행자들에게 자유와 모험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여정은 처음부터 모두에게 열려있지는 않았다. 20세기 중반까지 이 자유로움의 상징인 자동차 여행길은 미국인들 중 흑인들에게는 끊임없는 위협에 노출되는 위험한 길이었다. 

그린북의 뿌리를 따라 걷다 『오버그라운드 레일로드(Overground Railroad)』

『오버그라운드 레일로드(Overground Railroad: The Green Book and the Roots of Black Travel in America)』는 바로 이 간극, 미국 여행의 그늘진 이면을 조명하며 그 시대로 이끈 책이다.

과거를 따라 걷는 여행은 단순한 추억이 아닌,
공존과 이해의 가능성을 넓히는 탐사이다

자동차가 자유를 뜻하지 않던 시대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들에게 자동차는 자유의 수단이기 이전에 '경계'의 상징이었다. 버스와 기차에서 받던 모욕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로 위에는 또 다른 위험이 곳곳에서 엄습하고 있었다.

1950년대, 한 흑인 가족이 최신형 쉐보레를 타고 여행하던 중 백인 보안관에게 정지 명령을 받았고, 생존하기 위해 운전수와 가정부로 가장해야 하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책에 언급된 이 일화는 흑인 여행자들이 일상적인 공포 속에서도 기지를 발휘하여 생존해야 했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이 책이 전하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그 모자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을 구하는 위장이었다."

도로 위의 공포는 일상이었고, 이에 대한 해답이 이 책, '그린북'에 담겨있다.

'그린북', 차별의 도로위에서 피어난 연대의 나침반

1936년부터 1966년까지 발간된 '그린북'은 단순한 여행 안내서가 아니었다. 흑인 커뮤니티가 만든 연대의 나침반이자 지도였다. 구글맵이 없던 시절, 흑인 여행자가 환영받을 수 있는 모텔이나, 주유소, 식당, 이발소 등을 정리한 이 책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당신이 찾고 있던 바로 그것! 이제 우리는 당혹감 없이 여행할 수 있습니다."

여행의 설렘보다는 생존의 안도감에서 비롯된 문구라고 하겠다. 책은 매년 업데이트 되었고, 전국적으로 퍼져갔다. 심지어 카리브해, 유럽 일부 지역까지 퍼져 흑인의 '이동할 권리'를 상징하는 책으로 자리잡아 갔다.

시대에 따라 진화한 여행 문화의 자취

캔디 테일러(Candacy Taylor)는 이 책에서 그린북을 단순한 과거의 유물로 취급하지 않는다. 책에 언급된 흑인들이 환영받는  4,000개 이상의 등재 장소를 직접 방문하고 조사하며, 그 자취와 흔적을 추적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곳은 단 5% 정도에 불과하다. 많은 장소들은 고속도로 건설, 도시 재개발이나 민권법 통과 이후 흑인 상권의 쇠퇴로 사라졌다고 한다.

"통합은 흑인에게 선택권을 줬지만, 동시에 우리의 커뮤니티 기반 경제를 파괴 했다."

테일러는 '진보의 아이러니'를 담담하게 풀어내며, 단절된 과거의 공간을 다시 연결하는 시도를 한다.

 책 속에 녹아든 인터뷰

 이 책의 진가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 그 시기를 살아낸 사람들의 목소리를 풍부하게 담았다는 데 있다.

  • 마틴 루터킹의 이발사 였던 Nelson Malden,
  • 그린북에 등재된 역사적 레스토랑 주인인 뉴올리언스의 Leah Chase,
  • 마이애미 호텔을 복원한 Enid Pinkney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한 증언을 넘어,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감정과 기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Nelson Maldan은 킹 목사의 이발사로 겪었던 긴장된 순간들을 생생히 증언하고, Leah Chase는 레스토랑이 피난처로 사용되던 시절을 회상하며 음식이 가진 문화적인 힘을 이야기한다.

풍부한 사진과 시각적 기록들

테일러는 단순히 글로서가 아닌 시각적 아카이브로 이 책을 구성했다. 직접 찍은 현재의 그린북 속 장소 사진, 1950년대 광고지, 뉴욕 할렘의 호텔 외관과 루트 66지도 등은 당시의 사회적 풍토와 공간적 배경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준다. 페이지를 넘기면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몰입감을 가져온다.

후에 청소년용 개정판도 출간되서 교육 용도로 활용이 되었는데 수록된 인터뷰나 저자 노트, 연대표, 참고 문헌 등이 깊이있게 학교에서 활용되었다고 한다.

문화와 공동체의 회복력을 보여주다

책의 제목 "Overground Railroad"는 남부 흑인 노예들을 북부로 탈출시키던 'Underground Railroad'에 대한 반어적인 은유라고 한다. 고속도로와 국도, 도로변의 장소들은 흑인 미국인들에게 하나의 해방구였다고 작가는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로드트립과 흑인 여행의 역사에 관한 책이 아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통해 현재를 성찰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하는 여정이라고 덧붙인다. 테일러는 그린북을 따라 걸으며 단순히 흑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만든 문화와 공동체, 그리고 회복력의 궤적을 지도 위에 다시 그린 것이다.

순회 전시로 확장되다

책에 담긴 내용들은 책으로서만 끝나지 않았다. 스미소니언 기관과 협력해서 순회 전시로 발전해 "Overground Railroad"라는 전시로 미국 전역을 돌며 더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를 알리고 있다. 사진과 기록, 인터뷰, 실제 그린북의 사본까지 전시되어 그 시대를 직접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여행지에서 이 전시를 만난다면 꼭 들러봐야 할 가치가 있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는 역사

"Overground Railroad"는 단순히 흑인 여행자의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여행의 의미와 형평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누가 어디로, 어떻게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가?
나의 지도는 누구를 포함하고,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가?

흑인 여행자들의 생존 지침서이자 희망의 나침반이었던 '그린북(Green Book)'의 역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책은 차별과 위험 속에서도 자유를 갈망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탐사이자, 놓치고 있던 공간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컬처트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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