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는 것이 여행의 시작”, 『LOST iN』으로 시작하는 진짜 도시 여행

여행을 준비할 때, 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들. 어디를 갈지, 무엇을 볼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최근 들어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반적인 여행 방식에서 벗어나 현지인처럼 그 도시를 살아보고 느끼는 데에 더 큰 매력을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행지는 더이상 수집처가 아니다. 더 깊게 보고 싶은 '경험'의 대상이 되었다. 소셜 미디어에서 주도하는 '사진 스팟' 위주의 여행 대신에, 도시가 가진 고유의 리듬과 속도, 그리고 '날 것'의 문화를 경험하는 흐름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에 맞춰 새로운 형태의 가이드북이 등장했다. 그 중 눈에 띄는 시리즈가 『LOST iN』 이다.

“길을 잃는 것이 여행의 시작”, 『LOST iN』으로 시작하는 진짜 도시 여행

LOST iN은 세계 여러 도시를 깊이 있게 둘러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독특한 컨셉의 가이드북이다. 단순히 '가야 할 곳'을 나열하는 대신,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로컬 공간과 그 공간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행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LOST iN의 철학, 경험, 가치, 의미

LOST iN의 가이드북은 여행이 단순히 '다녀왔다'고 말하기 위한 통과의례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경험이라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경험의 가치와 의미에 관한 것"이라 설명하며, 여행자들이 어떤 도시를 방문할 때 그곳 특유의 냄새, 맛, 느낌, 소리, 그리고 시각을 온몸으로 느끼길 권하고 있다.

"LOSI iN은 경험의 가치와 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러한 경험이 불러 일으키는 냄새, 맛, 느낌, 소리, 시각에 관한 것입니다."

주어진 도시를 관광 명소 중심으로 파편화하는 대신, 도시라는 유기체가 만들어내는 문화와 예술, 음식, 사람들의 생활상을 깊이 느껴보도록 돕고 있다. "현지인들이 맹세하고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신경 쓰지 않는 것들에 대한 통찰력을 주고 싶다"는 가이드북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한 때 여행자들의 바이블이었던 『Lonely Planet』과는 다른 결이다.


획일화된 여행에서 벗어내기

소셜 미디어가 일반화되면서 특정 장소가 지나치게 유명해지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어디를 가든 비슷한 '인증샷'을 남기며, 여행지의 독특한 스토리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 졌다. 장소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색이 사라진 것이다. 

LOST iN 시리즈는 소셜 미디어에 의해 초래된 획일화된 여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의 장을 열겠다는 기획의도를 담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노선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전 세계 28개 이상의 도시 가이드가 출간되었고, 각 도시마다 고유한 개성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

'타이포그래피'로 말하는 도시

LOST iN을 받자마자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되는 건, 혁신적이고 감각적인 표지 디자인이다. 여행가이드북이 가지는 전형적인 랜드마크 사진이나 유명 건축물로 도시를 표현하는 대신, Node Berlin Oslo 디자인 스튜디오가 도시 고유의 분위기를 타이포그래피로만 표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도시는 상징적인 클리셰화된 이미지로 표현됩니다. 타이포그래피로 작업하면서 타이포그래픽 참조의 암시를 포함하여 더 미묘하게 표현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 철학은 각 도시가 지닌 성격을 폰트로 풀어내는 유니크함으로 이어졌다. 런던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블록 형태의 폰트로, LA는 자유분방함을 담은 필기체로, 비엔나는 셰리프 타입 페이스를 사용해서 역사적인 우아함을 드러내고 있다.

각 권은 약 70페이지 내외의 분량으로 컬러풀한 페이지이면서 21×16cm의 포켓사이즈의 판형으로, 여행할 때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도 부담스럽지 않는 실용성을 가지고 있다.

다양하고 심층적인 문화 가이드

이 책이 돋보이는이유는 다양한 컨텐츠들의 결합에 있다. 책은 도시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섹션을 체계적으로 배치해 놓고 있다.

로컬 전문가와의 인터뷰

각 도시마다 5명 내외의 로컬 전문가(셰프, 뮤지션, 기업가, 예술가등)를 선정해서 그들이 추천하는 장소와 그 도시에 대한 생각을 공유한다. 도시가 어떻게 생겨나고 창조적으로 발전해 왔는지, 어떤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지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매력적인 추천 지역과 탐방

여행자들로 하여금 자기 취향에 맞고 편리하게 일정을 조정할 수 있도록 음식이나 음료, 파티, 쇼핑, 야외 활동 등 관심사에 따라 도시를 탐방할 수 있게 구성하고 있다.

한 도시 내에서도 매력적인 두 개의 스팟을 골라 심층적인 시각으로 소개한다. 제한된 시간에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장소가 가진 감성을 빠르게 파악하도록 돕고 있다.

단순히 '어디를 가서 무엇을 먹어라'가 아닌, 도시 문화와 뿌리가 현재를 잇고 있는 심층적인 기사와 현지 사진작가들의 작품, 단편소설, 도시의 정서를 담고 있는 추천도서와 영화, 음악까지 담겨 있다. 여행전에 도시의 분위기를 미리 체화할 수 있는 것이다.

LOST iN 서울, 익숙함을 낯설게 즐긴다

서울을 소개하는 LOST iN 서울편은 한국의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역동적인 에너지에 주목한다.
"옛 인쇄소에서의 드링크, 인터랙티브 아트, 사라져가는 지역, 전자제품 사이에 숨겨진 갤러리.." 처럼 낯설지만 매혹적인 서울의 단면을 끄집어 내고 있다.

서울편의 핵심 포인트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물론 이미 여러 번 다녀온 이들에게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K-POP과 한류에 얽매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서울'을 찾아가는 여정에 가깝다. 오래된 빌딩 곳곳에 자리 잡은 문화 예술 장소나 전통 시장 사이에 존재하는 창의적인 공간까지 발견할 수 있는 장치들이 책 속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일반 가이드의 틀을 벗어던지다

Lonely Planet, Rough Guide 같은 전통적으로 유명한 가이드북들은 정보를 최대한 많이 담아 내는 방식으로 출간되었다. 하지만 LOST iN은 큐레이션에 초점을 맞추며,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고, 차별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터넷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가이드북은 형식 자체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에 비해 가볍고, 정성스러운 큐레이션되 대안을 제시한다"

하이퍼 로컬(Hyper-Local)을 접목하다

2024년 부터 LOST iN에 새로운 경영진이 합류하면 특정지역에 특화된 하이퍼 로컬 가이드를 기획하고 있다. 파리의 마레지구, LA의 베니스 비치 등과 같이 한 도시 전체가 아닌 도시 내의 개성 강한 특정 스팟의 더욱 디테일한 정보를 담아 내고 있다.
"단순히 장소를 조명하여 관광객들로 넘치게 하는 게 아니다.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도시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진정성 있는 소통이 주는 선물

관광객의 시선에서 그 도시를 살고 사랑하는 현지인의 목소리에 중심을 둔, 그리고 일방적인 관찰자로부터 도시의 삶에 잠깐이라도 동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가치를 담은 책으로 평가받는 LOST iN은 종이책을 넘어서 새로운 여행 미디어의 모델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에는 기존 인기 도시 였던 도쿄, 스톡홀름, 암스테르담 등의 개정판과 미국 도시 2곳에 대한 신규 책자가 발간을 앞두고 있다.

"여행은 길을 잃는 데서부터 진짜가 시작된다."

계획된 동선에서 잠시 벗어나보라고 조언하는 LOST iN. 가이드북을 펼치는 순간, 기꺼이 길을 잃을 준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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