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Patagonia』 나는 끝없는 황무지에서 나를 만났다
브루스 채트윈(Bruce Chatwin)의 『In Patagonia』 는 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의 파편을 모은 산문집에 가깝다. 1977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여행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물리적인 여정을 통해서 내면의 정신적 여정을 병렬적으로 드러내는 점이 일반 여행기의 틀을 뛰어 넘고 있다. 그는 파타고니아라는 지리적 공간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과 서사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고 있다.
브론토사우르스 조각에서 시작된 집념
동글동글하게 마모된 가죽 조각 앞에서 어린 채트윈은 단순한 호기심 속에서 그만의 집념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 가죽 조각이 한때 브론토사우르스의 일부였다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
이 조각이 거대한 백악기의 초식공룡 브론토사우르스로 상상하면서, 채트윈의 내면에 불꽃처럼 번지며 파타고니아로 향하는 결정적 기폭제가 된다. 실제 가죽조각은 고대의 거대 나무늘보 화석 조각 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공룡과 인간, 과거와 현재가 뒤얽혀 한 편의 드라마를 이루게 된 것이다. 유년기의 순수한 상상력은 성인이 된 후에 파타고니아 최남단까지 인도하게되는 심리적인 나침반으로 작용하게 되며 책 전반에 모티브로 자리잡는다.
광활한 풍경 속으로
중반부에서 '바람의 땅'인 파타고니아의 혹독한 자연과 마주하게 된다. 해안의 깎아지른 절벽은 거친 파도에 맞서 단단히 버티고, 빙하가 녹아 흐르는 호수는 잔잔함 속에 오랜 세월을 품고 있다.
"바람은 귓전을 채찍질했으며, 대지의 광맥을 모두 드러낼 듯한 기세로 몰아쳤다"
티에라 델 푸에고에 있는 마지막 인간 거주지에서 고독이 얼마나 무겁고 가슴을 짓누르는지 체감하게 된다. 영하의 기온 아래 얼어붙은 만년설은 잔혹한 영화 필름처럼 인간의 흔적을 감추고, 사방에서 몰아치는 바람은 인간의 미약한 존재감을 매 순간 일깨우게 한다.
그는 이 풍경을 단순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간주해서 시적인 묘사로 풀어냈다. 사진 한 장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생동감과 전율, 경외감을 동시에 전하는 묘사는 파타고니아 한가운데로 이끌고 있다.
경계가 없는 이야기의 물결
파타고니아의 아득하게 넓은 지형보다, 저자가 진심으로 주목했던 것은 이 땅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 들이였다. 역사적문헌과 현지의 전설, 인터뷰, 자신의 사색이 어우러져 하나의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어느 부분이 사실이고 허구인지 경계를 허무는 논픽션 기법을 통해 읽는이로 하여금 스스로가 진실을 좇게 만들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리가 아닌 이야기가 더 중요했다"
짧은 에피소드는 파편처럼 가볍게 보이지만 모자이크 처럼 배열 되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다. 과거 탐험가들의 기록과 현지 주민들의 구전 설화, 1974년에 자신의 여정이 교차 편집되어 파타고니아는 시간과 공간이 공존하는 '생동하는 무대'가 되었다.
파타고니아 사람들의 초상
채트윈이 만난 인물들은 고립된 땅에서 각자의 이유로 뿌리 내린 이들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곳에서 살아남은 방식의 이야기를 안고 있었다"
아라우카니아에서 자칭 '필리페 왕자'라고 하는 전하, 악명 높은 미국의 은행 강도 부치 캐시디의 후손 그리고 웨일스 이민자 가문의 3대 째의 농부까지 파타고니아를 피난처이자 안식처를 삼고있다. 구술 인터뷰를 통해 기억 속에 묻힌 개인사를 꺼내고, 그 여백 사이로 식민의 역사와 정체성의 갈등을 담아내고 있다.
푸에기안 인디언의 후손들은 유럽 식민화 과정을 증언하는데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의 흔적을 들려준다. 파타고니아가 토착과 이주의 역사가 복잡하게 뒤얽힌 정체성 장소로 나타내고 있다.
여행이 던지는 질문들
여정의 끝에서 채트윈은 낯선 땅에선 자신의 내면에 질물을 던진다.
"집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속해야 하는가?"
'집'이라는 개념이 단순하게 거주하는 공간을 넘어선 인간의 정체성과 연결된 심리적 안전망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가 파타고니아를 떠나기 전,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정착과 방랑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하고 있는 자신의 잊혀진 본성을 자각하게 된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유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된 욕망이 인간 모두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방랑자의 흔적처럼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집에 대한 질문 자체가 왜 인간이 낯선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결국 다시 돌아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돌아보게 한다.
영화같은 파타고니아 여행을 꿈꾼다면
영화보다도 더 영화같은 극적인 공간 파타고니아로 떠나고 싶다면 현실 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10월에서 3월 사이에는 낮이 길어 빛과 그림자의 변화를 포착 할 수 있다. 4월부터 9월까지는 적설량에 따라 백색의 고요함을 만끽할 수 있다. 우수아이아에서 출발하는 빙하 크루즈나 현지의 가이드투어가 채트윈의 묘사한 자연과 역사현장을 더 자세하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 책을 읽고 떠난다면, 책 속의 문장들이 실제 풍경 속에서 다시 살아나 여행의 의미는 배가 될 것이다.
파타고니아를 다시 꿈꾸다
"나는 끝없는 황무지 에서 결국 나 자신을 만났다"
채트윈의 이 한 문장은, 읽는이를 파타고니아의 한 복판으로 초대한다. 파타고니아라는 거대한 캔버스를 배경으로 그가 그린 자연과 인간, 이야기의 경계는 세월이 지나긴 했지만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다. 광활한 황무지 위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질문과 마주하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기대하게 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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