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의 계곡, 숨겨진 페르시아 오지를 찾아서

20세기 초, 중동 오지의 땅을 홀로 여행하며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탐험을 기록한 프레야 스타크(Freya Stark)의 『암살자들의 계곡(The Valleys of the Assassins)』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읽는 이에게 마치 타임머신에 몸을 실은 듯, 모험과 역사, 미지의 장소로 흠뻑 빠져들게 한다.

암살자들의 계곡, 숨겨진 페르시아 오지를 찾아서

프레야 스타크, 경계를 허문 여성 탐험가

1893년 이탈리아와 영국계 혼혈로 태어난 프레야 스타크는 평범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탐험이라는 매혹에 사로 잡혔다. 30대 후반 베이루트행 화물선에 오르던 날부터 그녀의 삶은 모험 그 자체가 되었다.

프레야 스타크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를 완벽히 구사하며 학문적 열정과 탐구 정신으로 당시 중동의 미개척 지역을 발굴하고 기록했다.

"지도를 손에 쥐고도 길을 잃을 수 있는 세상에,
오직 자신의 눈과 호기심만으로
길을 찾아나선 여성이 있었습니다."

여행은 그저 눈앞의 풍경을 담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내면 깊숙한 열정을 추구하는 여정이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것이 발견될 때까지 계속 걸었다."

프레야가 여행하던 시기, 이란은 레자 샤 팔라비(Reza Shah Pahlavi)의 근대화 정책을 통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던 때이기도 하다. 서구 문물이 빠르게 들어오고 전통적인 생활 방식이 점차 변화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오히려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는 오지의 지역과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상의 터전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고민 하던 시기, 프레야는 이러한 과정에서 현지인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기록해 남겼다.

탐험의 시작

프레야는 서문에서 자신의 탐험 동기와 배경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페르시아의 역사와 암살자 교단(Nizari Isma'ili)의 신비로운 본거지 알라무트 성을 탐구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단순한 여행을 넘어 역사적, 문화적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여행임을 강조하며, 여행이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탐험 철학과 학문적 접근이 이 책을 여행기에서 역사적 기록물로 승화시킨 것이다.

또한 그녀가 이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과 준비과정도 간단히 언급된다. 바그다드에 한동한 머물며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를 익히고, 고고학과 지도제작에 대한 기본 지식을 습득한다. 꼼꼼한 준비가 있었기에 척박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목적지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암살자들의 흔적을 따라서

이 책은 1930년 부터 1932년 사이 페르시아(현재 이란)의 미지의 지역을 탐험한 다섯가지 주요 여행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중세 시대 '어쌔신(암살자)'라 불렸던 이스마일파의 비밀스러운 성지 알라무트로 향하느 여정은 책의 핵심적인 이야기이다.

프레야는 알라무트 성을 찾아가는 길 위에서 이렇게 적었다.
"계곡은 이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다.
마지막 희미한 일몰의 기운이 마을 집들 너머 계곡의 아래쪽 가지에 남아있었다.
집들의 평평한 지붕은 나무들 사이에 끼어 경사면을 따라 하나씩 올라간다.
우리 뒤의 거대한 산 너머로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생생한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녀의 시선으로 페르시아 산악 지대를 걷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알라무트 성의 전설과, 중세에 활동했던 암살자 교단의 이야기들은 묘한 긴장감을 더한다.

미지의 지도를 완성하다

책을 통해 보여준 가장 큰 놀라움은 직접 발로 걸으며 미개척 지역의 산악 지대와 강 줄기를 측량하고, 현지인들에게 묻고 답하며 상세한 지리적 정보를 수집한데 있다.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기도 하고, 탐험 과정에서 발생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생생한 에피소드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루리스탄은 여전히 마법 같은 이름입니다. 강줄기는 지도에 파란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고, 그 언덕들의 위치는 취향의 문제입니다. 여전히 탐험가를 위한 나라입니다."

당시 서구 지도에는 페르시아 내부의 많은 지역이 빈칸이거나, 부정확한 정보로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불명확성을 탐험을 통해 하나씩 해명해 나간다. 목동과 마부, 상인들로부터 얻은 정보는 때로는 모호하거나 서로 충돌했지만, 현장을 확인하며 교차 검증을 시도할 만큼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현지 문화를 바라본 시선 

프레야가 현지인들과 교류할 때 보여주는 태도 역시 책의 내용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외국인이자 여성 탐험가는 경계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다른 여행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여성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어느 작은 마을에서 만나게 된 여성들과 차를 나누어 마시며 유년시절부터 겪어온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녀는 이를 세세하게 기록했다. 문화적 특성과 풍습, 그리고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들이 체감하는 일상을 구체적으로 적어둔 부분들은 현재까지도 가치 있는 인류학적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사람들에게서 듣는 소소한 일화들도 놓치지 않고 있다. 전쟁과 제국의 역사라는 거대한 서사뿐 아니라, 작은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 설화, 가족 간의 갈등,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그려지는데, 이런 묘사들을 통해 독자들은 당대 페르시아인들의 생생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기록들은 여행기라는 장르를 넘어, 귀중한 민속학적 자료로도 손색이 없다.

여정의 마무리와 탐험의 가치

후문에서 그녀는 자신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고고학적 발견과 지도 제작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성과를 강조한다. 여행 중 몸소 겪었던 어려움과 말라리아, 이질과 같은 건강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 놓으면서도,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얻은 문화적인 통찰과 인간적 성장을 중요한 성과로 평가한다.

자신이 직접 조사했던 알라무트 성의 구조와 주변 지형, 거기서 발견된 유적들에 대해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계곡과 그 요새들은 이미 시간 속에 깊이 묻혀버렸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통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녀의 여정이 흥미 위주의 탐험이 아닌, 역사의 흐름에 귀를 기울이고 현지 문화화 삶을 존중하며 기록했음을 알 수 있는 구절이다.

프레야의 문체와 책의 특징

그녀의 글은 시적이고 아름다운 묘사로 가득 차 있다. 자연 풍경을 서술할 때는 회화적인 장면을 눈앞에 그려내듯 표현했고, 현지인들과의 대면에서는 따뜻하고 사려 깊은 시선이 담겨 있다. 동시에, 특정 지형이나 유적지를 설명할 때는 객관적인 학술 자료에 준하는 꼼꼼함을 보여준다.

책에 담긴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여행이라는 것이 단지 새로운 장소를 보는 행위를 넘어, 마음과 영혼을 풍요롭게 만드는 내면의 여정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누구나 떠날 수 있지만, 아무나 제대로 기록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진정한 모험'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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