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 속 숨은 맛 보석, 『Amber & Rye』의 뜻밖의 레시피

유럽 여행이라면, 프랑스나 이탈리아, 영국 같은 잘 알려진 곳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유럽 동쪽으로 눈을 돌린다면 발트해 연안이 눈길을 끌게 된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같은 유럽의 비밀정원 같은 나라들은 중세 시대의 문화유산부터 구 소련의 통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는 나라들이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거듭나고 있는 이 곳에서는, 전통과 새로움을 동시에 간직한 음식문화를 만나게 된다. 저자인 주자 잭(Zuza Zak)의 『Amber & Rye : A Baltic Food Journey』는 발트에 자리잡고 있는 세 국가의 음식과 문화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 작품이다.


"발트해의 바람 속에는 오래된 노래와 젊은 재료들이 공존한다"

가족사가 빚어낸 여정

전통과 현대가 맞닿아 있는 발트 3국은 유럽의 새로운 여행지로서 주목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들이다. 이 책의 시작은 저자의 가족사에서 시작된다. 폴란드계 혈통이라 믿어왔던 할머니의 삶과, 뒤늦게 밝혀진 발트인으로서의 유전적 뿌리는 주자 잭이 발트의 3개국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음식 작가이자 슬라브어 및 동유럽 연구를 전공하는 학자로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정체성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식탁이 가장 먼저 답해주었다."

음식이야 말로 그가 탐구한 문화와 역사를 관통하는 독보적인 통로임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숨겨진 유럽, 발트의 매력

그녀는 이전 저서였던 『Polska : New Polish Cooking』 을 통해 이미 동유럽 요리의 매력을 알린 바 있다. 『Amber & Rye』에서는 더 깊이 있는 시각과 풍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Amber(호박)라는 상징성

호박은 발트해 연안에서 흔히 발견 되는 보석 광물이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발트의 금'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책에서는 호박을 단순히 장신구나 관광 상품으로 취급하지 않고, "세 나라가 공유하는 오래된 기억이 투영된 빛"으로 묘사하고 있다

Rye(호밀)이라는 상징성

반면 호밀은 발트 지역에서 가장 대표되는 곡물이다.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그리고 에스토니아의 식탁에서 호밀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책의 표현처럼, 호밀빵과 호밀 가루는 전통 음식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식재료이다. 

긴 겨울과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좋은 호밀은 발칸이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끈기있는 면과 실용주의적인 면모를 상징하고 있다.

여행과 요리가 만나는 접점

『Amber & Rye』의 총 255페이지 속에는, 풍성한 컬러 사진과 삽화가 가득하다. 그러나 단순히 레시피만 나열한 요리책과는 결이 다르다.

발트의 도시 에세이

에스토니아의 탈린, 라트비아의 리가, 리투아니아의 빌뉴스 등 책에서 소개하는 도시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 대부분이다.
"오래된 골목의 돌바닥을 걷다보면, 그 발소리만큼은 옛 시절과 오늘날이 섞이는 듯하다."
그녀의 말처럼 책에는 발트에 대한 문장들은 현지 분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레시피, 발효식품

수프, 메인, 디저트, 음료 등 테마별로 묶인 레시피는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응용 또한 가미되어 있다. 소렐(Sorrel) 수프에 돼지 갈비를 추가하거나, 크랜베리를 활용한 머랭 롤라드를 만드는 등 이국적인 재료와의 색다른 조합이 그것이다.
또한 발트 해안의 거친 기후로 인해 발달한 피클이나 소금절이, 훈제 등의 다양한 보존 기술의 특징을 독특한 발효문화로서 소개하고 있다.
"겨울 바람은 식재료를 숙성시키는 가장 훌륭한 동반자이다"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

한자 동맹 시절부터 소비에트 연방 시절까지 발트 3국이 겪어온 시간의 흔적 또한 요리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흥미진진하고 채치있게 표현해냈다.

"음식은 지배층이 바뀌어도, 오랜 전통의 피클 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발트 3국의 음식문화

오랜동안 발트 3국은 러시아와 폴란드, 독일, 스칸디나비아 지역 등 여러 주변 국가의 문화적 교차로 로의 역할을 해왔다. 문화적 영향은 생선 절임, 훈제, 발효 등 다양한 음식 기법으로 발달되었고, 각 나라들의 고유의 색채도 분명하게 남아 있다.
"선대의 방식이 세련되게 재해석되는 곳이 바로 발트의 식탁"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와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설명하며 감자 요리나 만두류가 인기라고 전한다. Cepelina(감자 만두)로 대표되는 음식은 중세 시대부터 가정에서 즐겼던 요리라고 한다.

독일의 영향을 받아 돼지고기 요리나 호밀 빵이 발달했다는 라트비아. 그녀가 리가의 어느 레스토랑을 방문했을 때, "빵 냄새만으로도 라트비아가 인색한 겨울을 견뎌온 이야기를 들려준다"라고 묘사한다 

에스토니아는 북유럽의 느낌이 강하다고 한다. 해산물과 허브 사용이 두드러지기 때문인데 카마와 같은 곡물 가루를 함께 사용하고, 베리류와 버섯, 달콤한 디저트 메뉴들이 많아 혹독한 발트의 바닷바람을 이겨내게 하는 훌륭한 조화라고 표현한다.

책에서 소개된 대표적 요리

소렐 수프와 돼지 갈비

"새콤달콤한 소렐 수프에 고소한 돼지 갈비가 어우러지면, 발트의 숲에서 풍겨오는 이끼 내음이 식탁 위를 뒤덮는다."

소렐은 허브의 일종이다. 발트 지역에서 봄부터 초여름까지 흔히 사용되는 식재료라고 한다. 소렐은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시금치나 근대와 비슷하기 때문에 대체 식재료로 레시피를 따라해 볼만 하다.

크랜베리 머랭 룰라드

크랜베리의 상큼한 맛과 머랭의 달콤함이 조화를 이룬 디저트인 크랜베리 머랭 룰라드는 "눈 덮인 발트의 겨울을 한 입에 머금는 느낌" 이라고 표현될 만큼 독특한 풍미를 주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발트 지역에서 베리류(산딸기)는 으레 '겨울을 깨우는 열매'로 불리며, 이 룰라드는 계절감을 한껏 살린 디저트라고 한다.

카마(Kama)와 대마 버터(Hemp Butter)

위에서 소개한 에스토니아의 전통 곡물 가루 카마는 다양한 식재료를 곱게 갈아 만든 것으로, 요거트에 섞어 먹기도 하고 빵 반죽에 넣어 풍미를 높이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고소한 대마씨(햄프시드)를 듬뿍 넣은 대마 버터는 고소하고 독특한 질감으로 "발트 사람들이 즐기는 고소한 취향의 정점"으로 소개된다. 


발트 요리에 깃든 르네상스

소비에트 연방 시절(구 소련) 오랜 통제를 받았던 이 나라들은 책에 담겨진 음식을 통해 문화적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자신의 것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이제는 창조로 바뀌어, 재탄생한 시대"

전통에 기반을 두었지만, 트렌드를 받아들여 새로운 레시피를 끊임없이 창작하는 모습이 책 안에서 포착된다. 음식을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나라의 정체성과 예술적 표현을 담는 캔버스로 정의한다.

여행과 음식, 역사를 한꺼번에 즐기고 싶다면 이 책은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전문적 요리도 있지만 초보자도 시도해볼 만한 '접근성'을 놓치지 않는 레시피 덕이다.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한 숟가락에 담기는 것은 그저 국물이나 양념이 아니라, 오랜 시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역사이자 문화"

당장 발트해 연안으로 떠날 수 없다 해도, '발트의 금'이라 불리는 호박의 색감을 닮은 요리를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여행이나 먼 곳에만 있지 않다. 내 식탁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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