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을 잇는 서사, 『더 오버스토리(The Overstory)』
인간 존재의 본질을 재고하게 만들며, 자연의 언어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시적인 여정. 리처드 파워스의 『더 오버스토리(The Overstory)』에 담겨있다. 나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인간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생태적 여행을 이야기한 가이드이다.
"당신은 지금껏 나무를 본 적이 없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인 패트리샤 웨스터포드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지금껏 나무를 본 적이 없다"
이 한 문장은 사람들이 수없이 지나쳐 왔던 숲과 공원의 의미를 뒤흔드는 충격을 안겨준다. 나무는 그저 배경이 아니라, 생명을 나누고 이야기를 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더 오버스토리"는 그 이야기들을 펼쳐놓으며, 인간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일깨우고 있다.
나무의 생애
책은 "뿌리(Roots)", "줄기(Trunk)", "수관(Crown)", "씨앗(Seeds)"이라는 네 개의 챕터로 나무의 생애로 구성되어 있다. 단지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여행을 통해 겪는 내적 변화를 은유적으로 상징하는 서사 구조인 것이다.
새로운 경험이 뿌리를 내리고, 다양한 만남과 사건을 통해 줄기를 세우며, 시야가 확장되는 수관을 지나, 결국 삶에 씨앗을 남긴다는 구조는 여행자가 간직하게 되는 내면의 여정과 닮아 있다. 수관의 챕터에서는 각각의 인물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며 가지를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각기 다른 인물, 여행의 길
"더 오버스토리"에 등장하는 9명의 인물들은 다른 환경, 배경에서 출발해 나무와의 우연한 조우를 통해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되고 자연과의 연대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리를 다시 정의한다.
니콜라스 호엘의 이야기
미국 중서부 아이오와의 한 농장에서 자란 그는 150년 이상 기록되어진 밤나무 사진들을 유산으로 물려받게 된다. 한 장소에서 찍은 긴 세월 동안의 사진들은 밤나무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니콜라스의 가족의 역사라는 연결점이 생기며 연속성을 일깨우고 있다. 농장이 사라진 뒤에도 유일하게 남은 밤나무는 그의 정체성이자 예술적 영감의 상징으로 남게되는 내용이다.
미미 마의 이야기
중국계 미국인이었던 미미 마는 어린시절 아버지에게서 전해 받은 세 개의 뽕나무 씨앗을 소중히 간직한다. 그녀에게 뽕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닌 문화적 뿌리이자 정체성을 담은 은유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공학자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가던 그녀는 차별과 소외 속에서 점점 자신의 뿌리를 되찾는 여정으로 나아가게 된다. 혹자들은 이러한 그녀의 서사가 새로운 환경에서 과거의 유산과 연결시키려는 디아스포라 여행의 전형을 보여준다고도 한다.
오레곤 레드우드 숲에서의 경외감
책 속의 중심되는 배경인 오레곤 주의 고대 레드우드 숲은, 우주로 표현된다. 수천 년을 살아온 나무들의 기둥 아래서, 무력감과 동시에 경외감을 느끼게 해주는 지역인 것이다. 마치 안데스의 마추픽추,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처럼, 인간의 손을 넘는 거대한 자연 앞에 숙연해지는 감각처럼 느껴진다.
레드우드 숲은 환경운동의 무대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자연과의 침묵 속 대화를 시작하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대화가 시작되는 지점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에서 놓치기 쉬운 시간의 감각
저자는 나무의 시간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행 중 얼마나 자주 서두르게 되고, 여러 장소들을 그저 소비하듯 스쳐 지나가는가?라고 묻는다.
"나무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보다 느리다. 그 느림은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가르친다"
책은 그 속도를 늦추라고 말하고 있다. 며칠간 한 숲에 머물며, 바람 소리와 나뭇잎의 흔들림을 '듣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진짜 여행이라고, 닐레이 메타가 만든 가상세계에서도 식물은 현실의 성장 속도를 따르도록 설계되어진다. 느림이 뜻하는 건, 단지 비효율이 아닌, 깊은 연결의 시작점 임을 드러낸다.
인간이 보는 풍경 뒤의 생태
자연의 상호 연결성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더 오버스토리"는 등장인물인 패트리샤가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숲이 뿌리 네트워크를 통해 소통한다는 것이다.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
이 메시지는 여행자가 새로운 공간을 마주할 때, 표면만 보는 것에서 그 안의 맥락과 관계를 인지하라는 것이다.
인간이 숲을 걷는 것은 풍경을 즐기기 위한 것에서 생태적 흐름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행위라고 말한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다
등장하는 인물 중 닐레이는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가상세계 안에 실제 생태곌를 구현하려는 흥미로운 캐릭터이다. 그의 시도는 VR, AR 기술을 통해서 '가상 생태 여행'이라는 미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포 팬데믹 이후 인간은 화면너머의 공간에 대해 경험하는 법을 개발하고 익혔다. 이 소설에서 그런 경험 들이 결코 피상적 이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무처럼, 천천히 뻗어가는
나무의 언어로 쓰인 "더 오버스토리"는 인간이 어떻게 자연과 관계 맺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철학서이자 여행가이드이다. 여행이 단순한 길 위의 행위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되 짚어보는 사유로 풀어내는 여정으로 나타낸다.
"삶은 나무와 같다. 밖으로 뻗기 위해선, 안으로 먼저 내려야 한다"
바깥세상을 향해 떠나기 전에 진정 바라보지 못했던 나무와 숲, 생명들과의 관계를 되새겨보고자 하는 내용은 진정한 여행자를 위한 여정의 나침반이다.
나무가 되어보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세우고, 가지를 뻗고, 씨앗을 남기는 여행을 지금 부터 시작해 보자. 내가 가는 길이 새로운 시작의 길이 될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