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선으로 떠나는 새로운 여행 – 알랭 드 보통의 「The Art of Travel」

일상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풍경과 이야기를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인 '여행'. 짜여진 관광지 방문 일정과 호텔 예약에 잠식된 상태라면, 그 여행이 품고 있는 본질은 어느새 빛을 잃을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의 「The Art of Travel」은 여행의 평범한 접근을 뒤집어, '왜 여행하는가?', '어떻게 여행을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제기한다. 장소 이동이라는 단순함을 넘어서는 여행이 우리 삶의 방식을 돌아보는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일깨운다.

철학적 시선으로 떠나는 새로운 여행 – 알랭 드 보통의 「The Art of Travel」

우리가 몰랐던 여행의 또 다른 얼굴

「The Art of Travel」은  여행을 마치 예술 작품 감상하듯이 조망하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여행에서 불가능한 것을 기대한다. 우리의 정신적 상태가 새로운 장소로의 물리적 이동과 함께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환상이다."

이 책은 여행이 결코 도피처만을 아님을 보여준다. 곧 다른 장소로 옮겨간다 해도 내면의 결핍이나 고민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준다.

많은 이들이 설렘을 좇아 여행을 계획하는 까닭은, 결국 이국적인 것에 대한 갈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행은 우리 안에 있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다."

여행에 대한 욕구가 어디서 비롯되어 왔는지에 대한 깊은 사유를 제안하는 것이다.

예술이 된 여행 - 관찰과 표현의 미학

알렝 드 보통은 여행지를 예술 작품처럼 느껴보길 권하고 있다. 그 중 존 러스킨의 사례가 이 점을 잘 드러낸다. 러스킨은 건축물의 미세한 장식이나 빛바랜 풍경에 담겨있는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저자는 이를 '러스킨식 보기'라고 지칭하며 "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관찰하는 것, 그것이 러스킨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예술의 본질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태도를 실천하다 보면, 사진을 대충 찍어 두는 행위를 넘어 그림을 그리거나 짧은 문장을 적어 보는 '느린 접근'이 가능해진다. 장소를 충분히 음미하고 섬세하게 살펴보며, 그 순간을 직접 표현하는 과정에서 풍경 속 세세한 부분과 마주하고, 동시에 자신의 내면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

이 책에서는 구스타프 플로베르와 샤를 보들레르가 보여준 '이국적 동경'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이들은 파리 일상에 답답함을 느낀 끝에, 전혀 다른 환경을 향한 갈망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다. 이런 열망은 "일상의 울타리를 넘어 미지의 세계에서 새로운 나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 나타난다.

알렝 드 보통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자아를 찾고자 하는 낭만적 기대에만 머물지 않도록 꾸준히 짚어 준다.

"이국적인 것에 대한 열망은, 내가 익숙히 살아온 세계가 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가깝다"

곧 낯선 풍경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익숙해지는 역설을 통해, 한없이 새로운 곳을 찾아 떠도는 인간의 갈증을 성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숭고한 자연 앞에서

자연경관에 대한 숭고함을 체험하는 설명이 적지 않게 수록되어 있다. 알프스 산맥이나 깎아지른 해안 절벽과 같은 광활한 풍광은, "자신의 자연 앞에 작아짐과 동시에 삶의 근원적 아름다움을 깨닫는 순간"을 선사한다. 저자는 에드먼드 버크가 말했던 '숭고미'와 연결지으며, 일상의 번잡함이 자연의 압도적인 장면 앞에서 한순간에 희미해진다고 전한다.

"숭고한 풍경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작은 존재임을 인식하게 되고,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위안을 얻는다."

거대한 자연이 일상의 고민을 상대화해 주는 힘을 암시하는 문장은 그 경험이 일상에 돌아왔을 때 또 다른 감정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여행이 일상으로 스며드는 방식

저자는 귀환 이후의 시간을 여행의 '완성'으로 본다. "여행의 진정한 목적은 돌아왔을 때 자신의 집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여행지에서 확보한 관찰력과 호기심은 일상 속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고 있다.

흔히 여행이 끝나면 다시 직장이나 가정으로 돌아가, 여행에서 느꼈던 감각과 감정들을 금세 잊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저자가 제안하는 '여행자의 정신'을 일상에도 끌어들인다면, 익숙한 길도 새삼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가 '나의 침실 여행'처럼 좁은 공간에서조차 낯선 상상을 펼쳤듯, 가까운 풍경 속에서도 무한한 발견을 해낼 수 있다.

철학적 여행이 던지는 질문

책에서는 독자에게 여러 물음을 던진다. 왜 우리는 낯선 곳에서만 더 나은 자신을 꿈꾸는가. 그곳에서 발휘되는 감각적 민감한 감성과 삶의 태도는 어째서 일상에서 희미해지는가.

"집에서조차 낯선 여정으로 떠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골목이나 거리의 표정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관찰 여행'이 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다. 단조로움을 미지의 세계로 전환하는 관점의 변화를 가리키고 있다.

예술가들이 전하는 여행

책에는 반 고흐, 보들레르, 플로베르, 러스킨 등 다양한 인물의 시선이 등장한다. 반 고흐의 화폭 속 빛과 보들레르의 이국적인 언어, 러스킨이 주목한 디테일은, 여행이 '어디를 가느냐'를 묻기 전에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한 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고흐의 붓터치 속에서 프로방스의 태양은 단순한 천체가 아니라 생명력을 주입하는 존재로 다가왔다"

어떤 시선으로 풍경을 마주하느냐가 현실의 얼굴을 결정짓는다는 점을 암시한다. 예술적 해석이야 말로 여행의 또 다른 경계를 넘어 마주하는 감정에 닿기 위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현 시대의 여행이란

저자의 관점은 서구중심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라는 의견도 팽배하다.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태도가 경제적, 시간적 제약이 있는 보통 사람들의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는 면이다.

하지만 현재에 던지는 '의식적이고 성찰적인 여행'이라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여행 인증샷에 치중하는 트랜드 한 편에서, 이 책이 제시하는 여행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한 숙고를 여행자에게 제안하고 있다.

여행은 잠시 멈춰 서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예술적 훈련이라 할 수 있다. 「The Art of Travel」을 통해 '여행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떠올려 보자. 그러한 묵상이야 말로, 매일의 풍경을 더 빛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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