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못 해도 괜찮아” — 『A Walk in the Woods』가 전하는 진짜 여행이란?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은 언제나 독특하다. 누군가에게는 끝없는 자유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온몸이 욱신거리는 발바닥 통증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 Bill Bryson의 <A Walk in the Woods>는 그런 '여행의 양면성'을 생생하면서도 유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한 번쯤 "나는 과연 얼마나 먼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 보고 싶다. Bryson이 도전한 애팔래치아 트레일(Appalachian Trail)은 미국 조지아주에서 메인주까지 쭉 뻗은 약 2,100마일(약 3,380km)의 길고 긴 하이킹 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걷는 것'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는 새로운 경험이다.

“완주 못 해도 괜찮아” — 『A Walk in the Woods』가 전하는 진짜 여행이란?

Bryson의 '솔직함과 과장의 교차점'

Bill Bryson의 문장을 빛나게 하는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솔직함과 과장'일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과장된 표현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그의 이야기 속 캐릭터들, 그 중 오랜 친구인 Stephen Katz와의 동행은 눈물겹도록 웃픈 상황이 연속된다. Katz는 과체중에 회복 중인 알코올 중독자로, 사실상 백패킹 경험이라곤 거의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이 여행에 대한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반부터 헤매고 엉뚱한 선택이 다반사로 생겨난다. 그런데도 이들은 '초보자의 실수'를 정면 돌파하며 어설픔을 유쾌한 유머로 풀어내고 있다.

이런 웃음 뒤에는 놀랄 만한 통찰력이 숨겨져 있다. 무거운 장비를 들고 험난한 오르막을 오르다가 느끼는 자기연민은, 곧 세상과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웃으며 반성하게 만드는' Bryson 특유의 글쓰기 패턴은, 단순히 여행기에 그치지 않고 읽는이에게 살아 숨쉬는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애팔레치아 트레일, 묵직한 존재감의 길

안전한 길도 없고, 뭐 하나 튀는 이벤트도 없는 듯 보이지만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길 자체가 캐릭터'가 되어 작품안에 녹아있다. 이 길 위에서 Bryson은 자연과 인간의 미묘한 관계를 몸소 느끼게 된다. 새벽녘에 들리는 동물 소리와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 고요함 속에 잠겨버린 숲속에 대한 묘사는 읽는이에게 현실 이상의 존재감을 선사한다.

낭만적인 길을 가장하고 있지만,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환경 파괴, 그리고 국립공원 관리국과 산림청에 정책문제를 제기하며, 인간이 자연에게 남긴 상처에 대해 깊이 있는 시선을 던진다. 

"아름다운 곳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건 아닌가?"

 

완주에 대한 '유연한' 태도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한두 달 만에 호기롭게 도전해볼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Bryson과 Katz는 결국 트레일 전 구간을 완주하는 데에 실패한다. "그렇다면 무슨 의미가 있지?"라고 묻고 싶을 수 있겠지만, 이 책 <A Walk in the Woods>가 흥미로운 이유는 '완주'보다 '과정'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둘은 어느 순간부터 트레일의 일부 구간을 생략하고, 차량으로 스킵하는 등의 '유연한' 방식을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여행의 이유'와 '도전하는 의미'에 대해 자문한다. '기어코 다 해내야만 성취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실패해도 배울 게 더 많을까?'에 대해서 말이다. Bryson은 완주하지 못한 것에 솔직한 아쉬움을 표현하면서도, 그 여정 자체가 주는 작은 깨달음들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하이킹의 진정한 매력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포인트 - 자연에 대한 '진짜' 사랑

관광지 팜플렛은 어쩌면 자연의 아름다움만 강조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팜플렛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고, 사람들이 둘러보지 못했던 곳을 재발견하는 시선으로 자연을 관찰한다. 걷는 내내 시시콜콜한 날벌레부터 드넓은 숲속과 토양과 지층을 파고들며, 환경 보존과 관련된 문제를 꾸준히 제기한다. 단순한 '생색내기'가 아니라, 정말로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트레킹 과정 속에서 자연관리 정책에 대한 다소 비판적인 어조를 보이기도 하는데, 읽는 이에 따라서 거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달리 보면, 이 비판이야말로 작가가 진심으로 자연과 그 터전을 지키는 사람들의 노고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걸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A walk in the Woods>는 하이킹을 다루지만 '인간의 관계', '도전과 실패', '유머와 통찰'이라는 주제들을 두루 아우르고 있다. 길을 끝까지 걷지 못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토닥토닥 전달하고, 언젠가 걸었을 자연 속 어딘가에서 지치고 헉헉대며 한 발씩 떼던 기억들을 소환하며, 걸었다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트레커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해준다.

Bryson은 독자들에게 길고 긴 하이킹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여행이란 완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뼈있는 남기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집 앞 공원길을 걷는 것 조차 새삼 반갑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생각하면 된다.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에 의미의 무게를 실으며 '걸.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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