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으로 떠나는 150년 전 동아시아
19세기 동아시는 서양인에게 미지의 세계였다. 인간들은 호기심과 위험의 간극에서 아슬아슬한 모험을 펼쳤다.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은 『중국과 일본』에서 그만의 독보적인 모험과 탐험을 기록했다.
그는 '실크로드'라는 명칭을 최초로 만든 위대한 탐험가이다. 단지 지도를 완성하는데만 그치지 않고 동서양을 잇는 문명 교류의 지리학적 기반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실크로드의 아버지 리히트호펜
리히트호펜은 1833년 독일 실레지아의 작은 마을 칼스루헤에서 태어났다.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브레슬라우 대학과 베를린 대학에서 지질학을 배우며 탐험가의 꿈을 키웠다.
초기 연구는 알프스 산맥과 트란실바니아의 지형과 지질탐사로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유라시아 대륙의 지형 변화와 고대 교역로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까지 관심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가 추구한 진정한 탐험에대한 운명은 동아시아에 있던 것이다.
1860년 '오일렌부르크 원정대'에 참가하면서 동아시아 탐험이 시작되었다. 일본, 대만, 자바 등 동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장대한 여정이었다. 당시 일본은 막부에서 메이지 시대로의 극적인 변화의 문턱의 시기였다.
"일본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새로운 문명과 옛 문화가 공존하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탐험의 열망, 중국으로 가다
리히트호펜의 궁극적 타험의 목표는 중국이었다고 한다. 그의 일기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미지의 대륙에 발을 디딘 순간, 나는 이곳에서의 연구가 내 일생의 사명이 될 것임을 깨달았다"
1868년 부터 1872년까지 그는 중국 전역을 7차례나 돌며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지질학자로서 황토 고원에서 먼지 폭풍을 몸소 체험하고, 황토의 풍성기원설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당시로서 그의 연구는 서양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며 현재까지도 중국 지질 연구의 기초적 기반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그의 대표작 "중국"은 지리학과 경제학, 민족학 등 다양한 분야을 다루며 중국 내륙 지역의 자원과 지형에 대한 포괄적인 최조의 기록을 담아내고 있다. 석탄, 철광석, 소금, 차나무 등 주요자원에 대한 상세한 기술과 자원들이 지역의 경제와 교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중국 내륙은 서양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자원과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땅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보물창고다"
미완성 걸작 '중국'
그의 걸작 "중국"은 끝내 완전한 형태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3권에서는 중국 남부 지역에 대한 지리탐사와 서양에서 주목 받지 못했던 중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나 문화적 관습, 행정 체계를 분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야심찬 프로젝트는 공백을 남기게 되었고 "중국"은 불완전한 걸작으로 남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미완성으로 남게되어 후세대의 탐구욕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고 상상의 여를 남겼다는 점에서 더 높이 평가되었다고 한다. 현대 지리학자들의 평가가 단지 찬사에 그치지 않고, 미완성이라는 열린 구조가 오히려 독특한 매력으로 보여진다.
동서 문명의 교차로 '일본'
리히트호펜이 일본에 머무른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동서 문명의 이정표로 떠오르고 있던 일본의 변화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잡아내어, 그 진면목을 기록에 남겼다. 일본의 내면은 그의 시선으로 서양에 비쳐졌고, 단순한 이국적 풍경이 머무는 일본이 아니라, 역사적인 주체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에도에서 목격한 이질감있지만 조화로운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근대식 유리상점과 목재 구조의 사원이 나란히 존재하는 거리, 찻집에서 기모노 차림의 상인과 군복을 입은 신병이 차를 마시는 장면, 그리고 교실에서 지구본을 돌리면 뉴턴의 법칙을 배우는 일본 청년 들의 모습"
이 모든 것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변화의 경계선 위에 놓여져 있던 일본 사회를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묘사한다.
"일본은 오래된 전통과 급격한 변화가 기묘하게 섞인 나라다. 사람들의 생활방식, 건축물, 사회 구조가 변화를 겪고있다."
일본 관련 기록이 적은 분량이지만, 메이지 유신 직전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현장에서 섬세하게 기록한 최초의 서양인의 시선이라는 측면에서 귀중하고 역사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내면을 담은 일기장
책에는 공식적인 저술외에도 그의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이 담긴 일기가 담겨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의 일상 생활과 자신의 심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학술적인 딱딱함을 녹이는 생생한 경험을 전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의 삶이 때로는 외롭고 고독하지만, 그럼에도 매일 새로운 발견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식민지 팽창의 그림자
책이 남긴 업적은 학문적인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독일의 제국시절 식민지 확장 정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독일이 칭다오 지역을 조차지로 선정하는 결정에 그의 지리적 연구가 기반이 된 것이다.
"정치적 목적을 넘어 과학적 진실에 헌신해야 한다"
나라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주는 위치에 있었지만 동시에 과학자로서 객관성과 진실성을 지키려는 강한 신념을 가졌다고 한다. 이런 신념이 제국주의적 목적과 과학적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려했던 내적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의 낡은 탐험기록이 아니다
그의 책을 읽을 때는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19세기라는 시대적인 맥락에 제국주의가 얽혀 있는 장면을 말이다. 책에 담긴 방대한 지도와 세밀한 스케치, 지형의 단면도는 지금 봐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다.
현재의 지리학, 역사학 서적과 비교해도 그 정교함과 디테일은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의 기술이 이거 밖엔 안되나라는 비판적 시각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라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지역을 과학적 언어로 해석하려 했던 그의 시도는, 비록 제국주의의 그늘과 맞닿아있지만, 인류의 새로운 지식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그 만의 열망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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