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쓰기도, 발음도 너무너무 괴상한 그 녀석, 뱡뱡멘

면 덕후의 중국 누들 먹부림 여행기
중면총(中麵總), 중국의 면을 총괄하다

01 뱡뱡멘 棒棒面 뱡뱡면 1  : 시안

이름도, 쓰기도, 발음도 너무너무 괴상한 그 녀석,
뱡뱡멘

시안(西安)이나 산시성(陕西省) 식당을 기웃거리다 보면, 간판에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복잡한 한자 두 마리에 국수를 뜻하는 ‘면(面)’ 자가 툭, 박혀있는 가게를 발견하게 된다. 중국어를 몰라도 걱정 없다. 괴상하고 복잡한 한자 두 개가 붙어있으면 그 집은 빼박켄트 뱡뱡멘 식당이다. 중국 사람들도 이 한자를 쓸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복잡한 이 한자는 무려 57획(62획으로 셀 때도 있음)이나 된다. 그래도 이 괴상한 한자 두 개가 붙어있는 가게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들어가도 좋다. 그 집은 어쩌면, 넓데데한 면발의 기가 막힌 비법 양념을 가진 뱡뱡멘 집일지도 모른다. 메뉴를 못읽어도, 찾을 필요도 없다. 그냥 손가락으로 간판을 가리키면 자동으로 주문 끝이다. 



시안은 원래 ‘장안(长安)’이라는 이름을 가진 멋진 고대 도시로, 역사가 3천 년이 넘는다. 장안은 실크로드의 시작점이자 끝점이고, 이 실크로드는 해양 루트를 통해 신라 경주까지 연장되었다. 당나라의 수도이자 중심인 장안성(长安城) 터 위에 네모나게 서 있는 시안 성벽은, 한 면이 2.6km에서 3.4km에 이르는 사각형 구조로, 네 변을 모두 더하면 총길이가 13.7km나 된다. 증축을 반복하다가 명나라 때 다시 쌓은 지금의 시안 성벽 안에는 중국과 유럽으로 오가던 실크로드 대상들과 이국적인 시장으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코끝을 간질이는 향신료 냄새, 지갑을 열게 만드는 비단의 반짝임, 입맛을 자극하는 고기 꼬치 굽는 냄새, 북 소리, 징 소리, 사람 소리가 쉼 없이 울려 퍼지는, 세상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핫플’이었다. 사마르칸트에서 온 파란 눈의 상인 아저씨도,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이국적인 향수 파는 아가씨도, 인도에서 향신료 잔뜩 싣고 온 수염 난 할아버지도 다 모여있었다. 각양각색, 언어도 뒤죽박죽. 손짓 발짓 몸짓으로 흥정하는 게 일상이었다.



행정, 군사, 생활의 중심지였던 시안 성벽 안쪽에는 아직도 레트로한 골목과 고택, 사원, 시장들이 구시가지에 남아있다. 반면 성벽 바깥쪽은 높다란 빌딩과 신도시, 번쩍거리는 상업지구가 펼쳐져서, 성벽 위에 올라서면 이쪽과 저쪽이 다른 시간대를 사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물론, 내가 애정하는 구역은 구시가지다.

내가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구시가지 골목은 그냥 걸어도 그냥 좋은 곳이다. 골목 사이로 삐뚤빼뚤 손글씨로 두 개의 복잡한 한자가 휘갈겨진 나무 간판을 발견하고는 홀린 듯이 그 식당에 쑥 들어간다. 오래된 뱡뱡멘 집임이 틀림없으니까.




언어를 몰라도 여행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중국에서 가장 확실하게 체득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 하고, 못 읽는 나는 그 괴상하고 복잡한 글씨를 그저 가리키기만 했는데도, 후이족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오래되어 보이는 질그릇에 고기 소스를 얹은 뱡뱡멘 한 그릇을 가져다준다. 삶은 청경채가 ‘나는 채소임’를 어필하고, 짜장면 같은 소스 아래에는 매끈하고 하얗고 넓적한 면들이 빼죽 숨어있다.

뱡뱡멘은 여러 가지 레시피가 있지만, 이 집의 뱡뱡멘은 덜 달달한 짜장면 맛이 나는 뱡뱡멘이다. 넓적한 면에 소스가 풍요롭게 묻어 기분 좋게 입안을 휘몰아친다. 아삭한 청경채와 간혹 씹히는 돼지고기의 식감이 보들보들한 면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맛. 아... 나는 시안에 있는게 맞구나...! 뱡뱡멘은 소확행이 맞다.



한 그릇 맛있게 비우고 나서 계산하려고 낡은 테이블에서 일어나니 벽에 어디서 본 듯한 사진들이 붙어있다. 그제야 알았다. 이 뱡뱡멘 집이 <신서유기> 시안 편에 기상 미션에 등장했던 그 식당이라는 것을...! 나영석 PD도 시안 성벽 안을 헤매다 이 오래된 식당을 발견하고는 아마도 무야호!를 외쳤을 거다.

‘산시성의 10가지 괴이한 것(陝西十大怪)’ 중 하나로 꼽히는 뱡뱡멘의 ‘뱡’자는 중국 한자 중에서도 최강 복잡함을 자랑하는데, 1자 쓰는 데만 무려 1분가량 걸린다고 한다. 참고로 이 글자는 민간에서 만들어진 비공식 한자라 공식 사전에 도 없다. 컴퓨터에서도 입력 불가다. 그래서 보통 비슷한 발음의 棒棒面이나 梆梆面으로 표기한다.

면발은, 원래 이름이 트램펄린이지만 동네마다 이름이 조금씩 달랐던, 어릴 적 ‘방방’ 위를 뛰어다니는 것처럼 쫀득하고 유연하게 흩날리는 느낌이다. 생김새도 이 이미지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칼국수보다 몇 배 넓적하고 탱탱한 면발이 입 속을 방방 뛰어다닌다.

뱡뱡멘의 이름은 반죽을 도마에 쳐서 늘릴 때 ‘뱡! 뱡!’ 하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뱡뱡멘이라 불렀단다. 또 하나의 썰은, 옛날 한 선비가 산시성 지역을 지나가다 수타면 가게에서 들리는 뱡뱡 요란한 소리에 이끌려 들어가 이 면 요리를 먹고, 밥값 대신 붓으로 복잡한 글자를 만들어 국수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유래야 뭐가 되었든, 시안에 가면 무조건 뱡뱡멘은 먹고 와야 진짜 여행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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