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면총(中麵總), 중국의 면을 총괄하다'를 시작하며

면 덕후의 중국 누들 먹부림 여행기
중면총(中麵總), 중국의 면을 총괄하다

프롤로그

중면총(中麵總), 중국의 면을 총괄하다를 시작하며

역대급 스트레스로 몸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손가락 하나도 들기 힘들어질 만큼 번아웃이 왔다. 아무리 검사를 해도 아픈 이유를 못 찾았는데, 병원에선 빼박 ‘화병’이라고 했다. 퇴사밖엔 살길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회사를 뛰쳐나온 후 한동안은 시체처럼 잤다. 좀 불안했지만, 일단 ‘내일은 없다’ 모드를 장착하기로 했다. ‘지금은 충실히 게을러야 할 시간’이라고.

TV와도 매우 친하게 지냈다. 화병의 뜻밖의 치료제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나영석 PD의 <신서유기>를 무한 반복 정주행했고, 이연복 셰프가 중국을 돌며 짜장면을 만드는 <현지에서 먹힐까>나 중화TV의 <주유천하>와,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등을 섭렵했다. 군침을 즬즬 흐르게 하는 프로그램들은 그저 빛, 힐링이었다.

그러다 정말 중국엘 가고 싶어졌다. 차마고도, 실크로드, 윈난성 등도 가봤고, 나름 배낭여행 중렙 이상은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결심은 곧 빠른 실행이 되었다. 중국어? 못한다. 한자? 못 읽는다. 그런데 별로 걱정도 없었다. 요즘은 번역기도 좋고, 만국 공통어인 눈치와 손짓, 발짓 스킬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무엇보다 화병 때문에 시름시름 죽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았다.

COVID19니, 팬데믹이니 하는 단어를 모르던 2018년 10월, 그렇게 나는 혼자 중국 여행길에 나섰다. 3개월짜리 단수 비자, 베이징 행 편도 티켓 한 장, 중국 여행 가이드책 한 권, 단출한 캐리어 하나뿐이었고, 목적지도, 계획도, 루트도 아무것도 없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내몽골로 가고 싶어서 후허하오터(呼和浩特) 외에는 정말 목적지가 없었다. 어딘가에서 머물다가 마음에 들면 더 있고, 도착한 곳이 별로면 미련 없이 떠나는 여행. 흘러가는 대로 여행하고, 먹어보고 싶은 건 다 먹고,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만 오자고 결심했다.

3개월짜리 비자를 받았지만, 갑자기 모든 게 싫어지면 중도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3개월을 꽉 채워서 돌아왔다. 내몽골의 후허하오터에서 시작한 여행은 베이징, 핑야오, 시안, 뤄양, 장예, 자위관, 란저우, 광위안, 청두, 광한, 충칭, 우룽, 다쭈, 펑황, 룽성, 싼장, 구이린, 양숴, 싱핑, 광저우, 싼야, 하이커우, 샤먼, 구랑위, 마카오를 거쳐 홍콩에서 끝이 났다.

가보고 싶던 시안(西安)과 샤먼(厦门)은 너무 좋았고, 우룽(武隆)과 다쭈(大足)도 볼 수 있는 충칭(重庆)은 참 예쁜 도시여서 예상보다 훨씬 오래 머물게 되었다. 광저우(广州)-하이난(海南)까지는 기차를 통째로 배에 태우는 미친 방법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기차를 탄 채 배를 타고 바다 위를 건너는 멋진 경험을 했다. 덕분에 하이난 싼야(三亚)에서는 반소매로 썸머 크리스마스를 맞았고, 구랑위(鼓浪屿)에서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았다. 베이징(北京)은 너무 복잡하고 짜증 나서 예상보다 일찍 탈주했고, 후배 놈이 강추한 란저우兰州는 대환장의 파티였다. 광위안(广元)에선 외국인에게 허용된 숙소가 없어서 개고생 삼만리를 해야 했고, 룽성(龙胜)과 싼장(三江)은 너무 오지여서, 도움을 준 묘족 아저씨 아니면 산속에서 울고 있을 뻔했다.

중국을 길게 여행해야겠다고 결심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면’ 때문이었다. 나는 일주일을 면으로만 먹을 정도로 면 덕후인데, 정말 중국은 면 천국이었다. 넓은 땅에 수백 가지 면발과 수백 가지 양념과 수백 가지 면 조리법이 존재하는 중국은, 면 덕후에겐 최고의 성지 순례지다. 그래서 여행하는 내내 하루 한 끼 이상은 무조건 면식이었다. 세 끼에 간식까지 몽땅 면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면을 먹어대도 질리지 않는 신기한 나라가 중국이다. 온갖 면발과 갖가지 양념과 요리법으로 황홀한 레알 누들 파라다이스. 맛있는 면들과 함께였기에 혼잣말로 욕을 해대던 고생스러운 배낭여행의 순간들도 지금은 행복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여정의 결과물이다. 3개월 동안 먹고, 또 먹고, 또 먹은 면에 대한 기록이다. <중면총(中麵總)>은 ‘중국의 면을 총괄한다’는 좀 거창한 제목일 수도 있겠다. 먹어본 면들 위주로 집필했기 때문에 중국의 모든 면을 다 담을 수도 없었고, 유명한 면들이 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면을 끔찍하게 사랑한 여행자의 소박한 이야기를, 독자와 함께 면식(麵食)하는 마음으로, 소곤소곤 나누고 싶다.

그대도, 면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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