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긴, 시간에 묻힌 도시를 걷다 『쉐도우랜즈(Shadowlands)』
영국하면 떠오르는 인상은 템즈강이 흐르는 활기를 띤 런던의 모습만이 아니다. 어릴적 즐겨보던 해리포터의 한장면 처럼 호그와트 급행이 달릴 것 같은 기차 창밖 풍경이나, 코츠월드의 초록 언덕을 떠올리게 된다. 매튜 그린(Mattaew Green)은 지도에서조차 흐릿해진 자취를 찾아 나선다.『쉐도우랜즈(Shadowlands)』는 돌무덤처럼 낮게 웅크린 폐허와 해무 속에 잠긴 잔교, 그리고 억새만이 출렁이는 빈 마을을 안내 표지판 삼아 독자를 시간의 가장자리로 이끈다.
“우리가 사라진 거리를 밟을 때, 시간은 발아래에서 미세하게 떨린다.” – 매튜 그린, Shadowlands
책의 첫 장을 넘길 때 느껴지는 섬뜩한 매력은, 여행자로서 내가 늘 찾아다니던 ‘숨은 명소’가 사실은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는 깨달음에서 왔다. 눈앞에 없는 것을 상상한다는 건, 낯선 나라에서 길을 잃는 것보다 더 깊은 방황임을 체감한다.
‘그림자 지도’를 펼치다 – 책이 건네는 초대장
“Cities may be built from solid stone, but they survive only in memory.”
그린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백 년간 먼지를 뒤집어쓴 지도 위를 걷는 학자이자, 런던 거리 투어를 이끄는 이야기꾼이다. “도시는 단단한 돌 위에 세워지지만, 기억 위에만 남는다”는 역설을 내세우며, 잃어버린 자리를 ‘실재했던 꿈’으로 되살린다.
페이지를 따라가다 보면 ‘지도 바깥’이라는 표현이 빈번히 등장한다. 나 역시 구글 지도에서 회색으로 남겨진 공백을 확대해 본 경험이 떠올랐다. 그곳엔 도로도 리뷰도 없지만, 상상력이 흘러들 빈틈이 있다. 그린의 초대는 결국 “상상력으로 길을 복원하라”는 주문처럼 느껴졌다.
모래 아래의 시간– 스카라 브레이
“폭풍은 모래를 벗겨내 스톤 에이지의 복도를 드러냈다. 그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5,000년을 미끄러져 내려갔다.(The storm peeled back the sand to expose a Stone‑Age corridor, and in that instant we slid, unawares, five thousand years into the past.)”
오크니 제도의 정착지는 중앙 벽난로 주변으로 돌제 작업대가 있고, 양쪽 벽에는 상자를 엎어 놓은 듯한 ‘박스 침대’가 벌집 칸막이처럼 배치되어 있다. 출입구 정면에는 가족의 위신을 드러냈다는 석제 드레서가 서 있으며, 바닥에서는 곡물 분쇄용 맷돌과 해초 끈을 엮은 밧줄, 뼈로 만든 바늘과 장식 구슬이 출토돼 5,000년 전 ‘집 안 살림’의 세목까지 또렷이 증언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오크니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찌를 때마다 ‘지금도 모래 아래에는 또 다른 방이 숨겨져 있겠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했다. 그린은 그 설렘을 과학 대신 서정으로 번역해 주었다.
두더지가 파헤친 중세 – 트렐레히
“한 무리의 두더지가 삼킨 흙더미 아래, 왕과 대주교가 걷던 길이 누워 있었다.(Beneath a mound of earth swallowed by moles lay the road once trodden by kings and archbishops.)”
트렐레히의 발견 서사는 2002년 아마추어 고고학자 스튜어트 윌슨이 농부에게서 3,000파운드에 사들인 밭에서 두더지가 파헤친 흙더미 속 기왓조각을 발견한 사건으로 촉발되었다는 점에서, 우연이 역사를 깨운다는 보편적 진리를 극적으로 증명한다.
두더지 덕분에 드러난 중세 거리를 상상하며, 나는 디지털 발굴—데이터 마이닝—역시 두더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정보의 지층을 뒤적이다 보면 뜻밖의 문명이 튀어나오지 않는가.
물과 싸운 항구 – 윈첼시
“바다는 헌장을 읽을 줄 몰랐다.(The sea could not read charters.)”
원래 해안 사주 위에 번창하던 이 항구 도시는 1236·1250·1287년에 몰아친 대홍수로 주거지 절반 이상이 유실되자, 1288년 에드워드 1세가 발행한 칙허(royal licence)에 따라 해수면보다 30 m 높은 필리스 힐(Falise Hill)로 전면 이전되었다. 왕실 토목 기사단이 체스판 형태의 새 거리망과 세 개의 시장 광장, 700여 가구를 수용할 부지를 설계했고, 성모 교회를 포함한 신도시는 1293년까지 단계적으로 완공되었다.
물러설 땅이 남아 있다는 것은 특권이다. 윈첼시 사람들은 실은 ‘도시를 통째로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발명한 선구자였다. 오늘날 방조제가 버티고 선 도시들의 미래가 겹쳐 보인다.
초지 위의 침묵 – 와람 퍼시
“양떼가 교회터를 지나갈 때마다, 돌기둥이 잠깐씩 설교단이 되었다.(Each time the sheep wandered through the ruined church, its columns briefly resumed their role as a pulpit)”
14세기 중반 흑사병 여파로 인구가 급감한 뒤, 15세기 말부터 귀족 지주들이 울타리(Enclosure)를 두르고 양을 방목하기 시작하면서, 와람 퍼시의 40여 채 농가와 두 개의 수차 제분소는 차례로 헐려 나갔다. 1527년 세입자 장부에 마지막 이름이 지워졌을 때, 마을 터는 완전히 초지로 흡수되었고 지금은 해마다 1,000마리 가까운 양이 푸른 언덕을 흰 점으로 수놓는다.
이 장을 읽으며 떠오른 그림은 ‘경제 그래프’가 아닌 ‘움직이는 사람들의 궤적’이었다. 변화는 숫자보다 발걸음에서 먼저 읽힌다. 빈터를 살피는 연구자는, 사실 한때 가득했던 소음을 듣는 청각 훈련을 하는 셈이다.
바다로 가라앉은 종소리 – 던위치
“지층이 아닌 파도가 기록한 연대기.(It is not the strata but the sea that has chronicled this story.)”
서퍽 해안의 던위치는 한때 12개의 교회와 세 곳의 수도원을 품은 해안 도시였으나, 1286년 대홍수 이후 연평균 약 1 m씩 깎여 나간 절벽 탓에 도시 면적의 90%가 바다에 잠겼다. 그 결과 물속에 묻힌 종탑에서 종소리가 썰물마다 들린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전설로 전해진다.
“지층보다 파도”라는 문장을 오래 붙잡았다. 기록 매체가 바뀌면, 기억 방식도 바뀐다. 파도가 책장을 넘겨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글자로 남게 되는 걸까?
절해고도, 고귀한 야생 – 세인트 킬다
“싱크대 밑으로 밀어넣은 마지막 절망.(The final despair stuffed beneath the sink.)”
섬을 떠나는 주민들의 뒷모습—쌓아 올린 해초 더미만큼 무거워 보이는 트렁크를 끌며, 마지막으로 돌담에 손바닥을 대던 노부인의 떨림, 뒤돌아보지 못한 채 바지선 난간을 움켜쥔 젊은 어부의 굳은 목선—은 지금도 인기 관광지에서 카메라를 향해 반쯤 미소 짓는 원주민의 복합적 표정과 묘하게 포개어진다.
관광이 ‘실직한 마을’에 가져오는 양가감정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마다 떠오른다. 내가 찍는 풍경이 누군가의 떠난 자리를 소비하는 건 아닐까. 세인트 킬다는 그 질문을 되묻는다.
전쟁이 남긴 유령촌 – 노퍽 전초기지
“현대가 재현한 가짜 과거.(A counterfeit past, meticulously recreated by the present.)”
군의 훈련용 ‘모형 마을’은 3만 에이커 규모의 스탠퍼드 훈련장(STANTA) 한복판에 2009년 완공된 ‘이스트미어(Eastmere)’ 복합 단지로, 어도비 벽돌풍 가옥 360채와 모스크·시장·경찰초소를 실제 배치대로 복원해 현실과 허구를 한 필름으로 겹쳐 놓는다.
게임세트 같은 전장이 실제 지명을 흉내 내며 우리 인식을 길들이는 방식을 떠올렸다. 과거를 복제한 시뮬레이션이 또 다른 상실을 낳지 않으려면, ‘체험’의 주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는 비평이 필요하다.
물속에서 들린 노래 – 카펠 셀린
“카펠 셀린은 웨일스 민족주의의 수중비석.(Capel Celyn became a submerged tombstone for Welsh nationalism.)”
1965년 수몰 직후, 시인 메익 스티븐스(Meic Stephens)가 애버리스트위스 남쪽, A487 도로변 돌담에 붉은 글씨로 남긴 ‘Cofiwch Dryweryn(드리웨린을 기억하라)’ 낙서가 탄생했고, 이 문구는 훗날 수차례 훼손과 복원을 거치며 웨일스 전역 수백 곳에 복제된 국민적 그래피티로 부활했다.
댐 호수 위로 카약을 띄우던 장면이 떠오른다. 잔잔한 물결 아래 묻힌 가정집을 상상하는 순간, 물빛이 갑자기 깊어졌다. 이 책은 ‘경치 좋은 호수’ 뒤에 숨은 언어와 눈물들을 통역해 준다.
시대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그린은 끝에서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당신이 사랑하는 거리가 폐허로 남을 때,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책장을 덮은 뒤, 나는 내 삶의 ‘쉐도우랜즈’를 목록으로 적어 보았다. 철거된 고향의 골목, 재개발로 사라진 극장, 공원 아래 묻힌 하천…. 사라짐을 기록하는 일은, 결국 남아 있는 우리가 ‘목격자’로서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하는 윤리적 선택임을 깨닫는다.
지도에 핀 표시를 따라가다 보면, ‘없음’을 보기 위해 ‘있음’을 소비한다는 역설을 깨닫게 된다. 빈터를 찾으려면 움직임이 필요하고, 움직임은 또다시 흔적을 남긴다. 여행자는 불가피하게 새로운 그림자를 생산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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