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ice Necklace』 바람과 향신료가 엮어낸 카리브의 기억

 여행과 음식이 서로의 언어로 대화를 나눌 때, 낯설지만 매혹적인 풍경 너머로 한발 다가갈 수 있다. 편집자 출신 작가인 Ann Vanderhoof는 남편과 함께 42피트의 요트 "Receta"에 올라 카리브해 2,000마일을 항해하며 맛보았던 음식의 향연을 『The Spice Necklace : A Food-Lover's Carbbean Adventure』에 담았다. 책 전반에 표현된 열대 과일의 깊은 단맛, 바다 내음 가득한 해풍, 목재 데크 위에서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The Spice Necklace』 바람과 향신료가 엮어낸 카리브의 기억

앤과 스티브의 요트 도전

잡지 편집자인 앤은 미묘한 문장과 풍부한 시각적 이미지를 다룰 줄 아는 인물이다. 남편 스티브 또한 아트디렉터 출신으로, 책에 담긴 실제 항해 촬영 사진으로 읽는이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있다. 

두사람은 캐나다 온타리오의 도시생활을 떠나 유례없는 바다 위의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했다. 항해경험 까지 전무했던 부부의 처음은 침착과 불안이 교차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넓은 수평선과 맞닿은 지평선에서, 밤하늘 별빛으로 항해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고, 돌풍에 대비해서 돛을 빠르게 교체하는 기술을 터득하기도 한다.

예기치 못한 열대성 폭풍우가 몰아쳐 갑판 위로 물이 쏟아지는 와중에 함께 로프를 당겨 돛을 조정하고, 바닷물에 담궈진 노트북과 레시피 시트가 펄럭거리는 광경이 일상의 풍경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요리를 위한 재료 수집에서 두 사람 관계에 깊이를 더하는 공감과 신뢰의 시간으로 새겨지게 된다.

"처음 바람을 받아 돛이 부풀어 오를 때, 두려움이 입안 가득 향신료처럼 퍼졌지만, 그 순간 우리는 바다가 준 선물을 만끽했다"

향신료의 목걸이가 주는 의미

카리브해 섬들의 물리적인 위치가 마치 진주 구슬을 꿴 목걸이처럼 이어진다는 의미에 영감을 얻어 "Spice Necklace"라는 제목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책이 전하는 목걸이는 지리적 연결에 더해 섬마다의 고유한 향신료가 엮어내는 연대감을 의미하고 있다.

"한 움큼의 시나몬을 손끝에 묻혔을 때, 나뭇잎 타는 듯한 달콤 쌉싸름함이 코끝을 스치고, 그 향은 곧 잔잔한 파도 소리와 어우러져 새로운 감각을 일깨웠다"

그레나다의 넛맥(Nutmeg)

전 세계 넛맥 생산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그레나다는 향신료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저자는 농장에서 넛맥 씨와 껍질을 분리하는 전통방법을 체험하게 되고 향이 숙성될수록 고유의 달큰한 향을 뿜어내는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한다.

마르티니크의 클로브(Clove)와 시나몬(Cinnamon)

마르티니크의 시장에서는 향신료 가게마다 수십 가지의 향의 유혹이 펼쳐진다. 앤은 그 중에서 서로 다른 굵기로 분쇄된 시나몬을 비교하면서 구별이 어려운 향의 미묘한 차이를 책에 담아냈다.

트리니다드의 강황(Turmeric)

따뜻한 금빛을 가지고 있으면서 음식에 강한 항산화 작용을 가져오는 강황은 카리브 요리에 빠질 수 없는 재료라고 한다. 앤은 노란색 가루에서 느껴지는 흙 내음과 고소함이 어떤 조리법에서 빛을 발하는지 탐구하게 된다.

카리브해의 부엌으로

여행 문학에서 가장 매력적인 순간으로 꼽는다면 그것은 작가가 단순한 관찰자에서 현지의 공동체에 일부가 되는 순간 일 것이다. 부부는 작은 가정집 부엌으로 초대를 받게 되고 함께 향신료를 찧고, 즉석해서 재료를 다듬으며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게 된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펭크린 가든

마을의 소수 주민만 아는 비밀스러운 정원에서 재배된 올레가노, 이 것을 먹고 자란 염소가 어떤 요리로 탈바꿈하는지 실습하는 과정을 담았다. 염소 고기는 허브 향과 야생화 향이 함께 배어, 그 풍미를 살린 스튜는 단번에 방문객의 오감을 사로잡는다라고 표현한다.

마르트니크 해변의 부엌

파도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야외에 차려진 부엌에서 현지의 할머니가 선보이는 코코넛 밀크 베이스의 생선요리는 신선한 물고기 육질 사이사이에 코코넛의 부드러움이 스며든 걸작으로 나타낸다.

"망고 가지 사이를 헤매며 향긋한 과일 향이 코 끝에 스칠 때, 현지인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망고좀 드시겠어요?' 우리는 망설임 없이 부엌으로 내려갔고, 거기서만 느낄 수 있는 환영의 온기를 경험했다.

레시피를 완성하다.

카리브해의 요리들은 대부분 구전으로 전달되고 있다. "한 꼬집", "한 줌"이라는 모호한 단위는 부부에게는 낯설게 다가왔다. 앤은 배 위의 주방에서 수십 번 레시피를 실험해 이 애매함을 계량화 시키며 기록되지 않는 구전을 전승으로 바꿔놓았다.

촘촘하게 적힌 레시피 일지에는 소금, 후추, 향신료 배합 비율을 달리해가며 맛 차이를 기록했고, 매번 다른 방법을 측정법을 제시한다. 또한 다이아몬트 리프 페퍼, 그린 벤틀리 등 희귀 향신료를 대신해 흔히 구할 수 있는 페퍼혼이나 가람 마살로로 대체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향신료 한 스푼마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야기는 결국 식탁 위에서 우리의 일상을 이어진다"

카리브 요리의 향연

그레나다의 넛맥 화이트 치킨커리 , 도미니카의 오레가노 양념 염소 스튜, 과달루페의 코코넛 카리부 스타일 라이스 등 맛과 보는 재미를 더하는 음식의 향연이 책 안에 담겨있다. 그 중에서도 앤은 특별히 그레나다 편에서 화이트 치킨 커리에 많은 할애를 한다. 

그레나다의 넛맥 화이트 치킨커리

신선한 닭고기를 부드럽게 익힌 뒤 코코넛 크림에 조리해 크리미한 질감을 강조하고, 현지 농장에서 갓 갈아낸 넛맥 파우더와 시나몬, 작은 카이엔 페퍼 한 꼬집을 더해서 입안 가득한 풍미를 완성한다.

넛맥의 달콤 쌉싸름한 향은 그레나다가 '넛맥의 섬'으로 불리는 역사적인 배경까지 상기시키며, 지역 주민들의 생업이자 문화적 자부심임을 강조한다. 이 한 접시 음식을 통해 독자가 향신료 거래에 얽힌 경제적 관계와 향이 기억에 깊이 각인되는 방식을 직접 체감하도록 의도하고 있다.

닭살의 부드러움과 넛맥의 따뜻한 단맛, 시나몬의 은은한 향, 그리고 카이엔 페퍼의 살짝 감도는 매운맛이 조화를 이루어 바다위 요트에서 어우러짐을 작가의 감각적 경험을 글로 재현하고 있다.

향신료의 향은 기억을 깨운다

"소파 위라도 이국의 바람과 향신료가 코 끝을 스칠 수 있다"

저자는 눈에 보이는 사실과 음식과 여행이 주는 감성적인 울림을 포착하고 있다. 앤의 세밀한 묘사는 때로 시처럼 읽히고, 현지인과의 대화는 인류학적인 관찰 기록으로도 확장해 볼 수 있다. 읽는이 들에게 바닷바람과 함께 미지의 향신료 세계로 이끄는 『The Spice Necklace』는 여행과 식탁을 넘어 삶의 태도의 확장으로 점철되고 있다. 모험이 선사하는 미각적 환희를 꿈꾸는 이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책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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